알고리즘 혁신과 데이터 점유의 경쟁법적 쟁점

2025년 영국 게티 이미지 판결을 중심으로

by 날개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이 지식재산권 체계에 던지는 도전은 영미법권 전반에서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영국의 사법적 대응은 미국의 공정 이용(fair use) 원칙과는 상이한 ‘공정 취급'(fair dealing)의 엄격한 틀 안에서 보다 정교한 기술적 분석을 요구한다. 2025년 11월 4일, 영국 고등법원(High Court of Justice, Chancery Division)의 조안나 스미스(Joanna Smith) 판사가 선고한 Getty Images (US), Inc. v Stability AI Ltd., [2025] EWHC 109 (Ch) 판결(원문)은 생성형 AI의 학습 과정이 영국 저작권법(CDPA 1988)상 복제권 침해에 해당하는지를 다룬 유럽 내 첫 번째 주요 이정표이다. 이 사건은 게티 이미지가 자사의 방대한 스톡 이미지 데이터베이스가 스태빌리티 AI의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모델 학습에 무단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며 시작되었으며, 법원은 AI 모델의 생성 원리와 데이터의 일시적 처리 과정을 법리적으로 정밀하게 해부하였다. 경쟁법의 시각에서 이 판결은 데이터 점유가 권력화되는 시장 구조 속에서 사법부가 기술적 실체를 어떻게 수용하여 혁신의 공간을 확보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적 사례이다.


사건의 핵심 쟁점은 AI 모델이 학습 과정에서 원저작물을 ‘복제’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물인 파라미터속에 저작권 보호 대상인 ‘표현’이 잔존하는지 여부였다. 게티 이미지는 스태빌리티 AI가 수십억 개의 이미지를 스크레이핑 하여 학습하는 과정에서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복제본을 생성했으며, 이는 영국 저작권법 제17조가 금지하는 복제 행위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스미스 판사는 AI 학습의 기술적 메커니즘을 근거로 원고의 주장을 신중하게 검토하였다(paras. 32-41). 법원은 스테이블 디퓨전 모델이 원본 이미지를 그대로 저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노이즈를 제거하는 ‘디퓨전 프로세스’를 통해 이미지의 통계적 속성만을 학습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였다. 이는 AI 모델 자체를 원저작물의 복제본으로 간주하기 어렵다는 논리로 이어졌으며, 데이터의 ‘소유’보다 ‘변형적 활용’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현대적 사법 해석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경쟁법적 담론에서 이 판결이 갖는 가장 중대한 의미는 시장 지배력의 원천인 데이터에 대한 ‘배타적 권리’의 범위를 획정했다는 점에 있다. 톰슨 로이터 판결이 법률 데이터에 대한 폐쇄적 통제를 허용함으로써 데이터 성곽(data moat)을 공고히 했다면, 영국 고등법원의 이번 판단은 데이터의 ‘추출적 이용’을 저작권의 절대적 지배권 아래 두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스미스 판사는 학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복제 행위가 데이터 분석이라는 새로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부수적 절차임을 고려하였다(paras. 55-62). 이는 데이터 보유자가 저작권을 무기로 인접 시장인 AI 서비스 시장으로 지배력을 전이(leveraging)하려는 행위에 대해, 영국 사법부가 기술적 특수성을 근거로 일정한 한계를 설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법원은 또한 영국 저작권법상 ‘비상업적 연구를 위한 공정 취급’과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TDM) 예외 규정의 적용 가능성을 심도 있게 논의하였다. 스태빌리티 AI는 자신들의 활동이 기술 발전을 위한 연구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학습의 상업적 목적과 배포 규모를 고려할 때 TDM 예외를 전면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paras. 74-81).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침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질적 실질성'(qualitative substantiality)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였다. 원본 이미지의 핵심적 표현이 모델의 가중치 속에 화소 단위로 남아있지 않다면, 이를 저작권법상 금지되는 복제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이다. 이는 지배적 플랫폼이 데이터를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경쟁사의 AI 학습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경쟁 정책적 관점에서 부당할 수 있다는 시각을 내포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시장 대체성’에 관한 사법적 균형 감각이다. 톰슨 로이터 사건에서 미국 법원이 AI 모델을 기존 서비스의 대체재로 보아 시장 영향을 높게 평가했던 것과 달리, 영국 고등법원은 이미지 생성 AI가 창출하는 ‘변형적 가치’에 주목하였다. 스미스 판사는 스테이블 디퓨전이 게티 이미지의 스톡 사진 시장을 직접적으로 대체하기보다는, 새로운 창작의 도구로서 기능한다는 점을 고려하였다(paras. 92-101). 이는 소비자 후생 관점에서 볼 때, 기존 저작권 시장의 보호보다 새로운 AI 기술 생태계가 가져올 동태적 효율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함을 사법부가 간접적으로 승인한 셈이다. 이러한 판단은 독점적 지식재산권이 혁신의 병목(bottleneck)이 되는 것을 방지하는 중대한 교정 기제로 기능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이 판결은 데이터의 역외 적용(extraterritoriality)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게티 이미지는 미국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영국 법원에 소를 제기하였고, 법원은 영국 내에서 발생한 서버 이용과 서비스 배포 행위가 영국 저작권법의 관할권에 속함을 명확히 하였다(paras. 105-112). 이는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데이터 학습 기지를 규제가 느슨한 곳으로 옮기더라도, 서비스가 제공되는 시장의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경쟁법적 시각에서는 이는 ‘규제 차익’을 노리는 독점적 사업자의 전략을 차단하고, 각국 시장 내에서의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는 판단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법원은 AI 모델에 의해 생성된 결과물이 원작의 ‘부당한 유용'(unjust enrichment)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원고는 자사의 워터마크가 생성된 이미지에 잔존한다는 점을 들어 침해의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모델의 학습 오류나 통계적 잔상으로 보았을 뿐, 그것이 곧 원본의 복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였다(paras. 115-122). 이는 기술적 결함과 법률적 침해를 분리하여 고찰한 결과로, 지배적 사업자가 지엽적인 증거를 앞세워 경쟁 기술의 전체적인 합법성을 부정하려는 전략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데이터가 필수설비로 간주될 때 발생할 수 있는 ‘권리 남용’의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억제한다.


결론적으로 게티 이미지 v. 스태빌리티 AI 판결은 인공지능 시대의 지적재산권이 ‘정적 보호’에서 ‘동적 경쟁’의 보장으로 나아가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저작권이 혁신의 통행세로 전락하여 데이터 부국들만의 전유물이 될 때, 사법부가 제시한 기술적 실체에 기반한 엄격한 법리 해석은 시장의 개방성을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이 판결은 데이터의 사적 소유권보다 데이터 속에 내재된 분석적 가치의 사회적 활용이 가져오는 총체적 편익을 중시하였다. 이는 알고리즘 권력의 독점을 경계하고 혁신의 파급효과를 지향하는 현대 경쟁법의 대원칙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향후 이 판례는 유럽 연합(EU)의 AI 법(AI Act)과 맞물려 글로벌 AI 데이터 가이드라인의 핵심 준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를 ‘잠근’ 톰슨 로이터의 논리와 데이터를 ‘분석적 자산’으로 개방한 스태빌리티 AI 판결의 충돌은 결국 입법적 결단으로 수렴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사법부가 보여준 정교한 기술 이해도는 향후 경쟁 당국이 데이터 독점 문제를 다룰 때 중요한 논리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알고리즘이 지능을 완성하기 위해 데이터를 필요로 하듯, 경쟁법은 시장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이러한 판례들을 통해 혁신의 경로를 끊임없이 재설계해야 한다. 결국 인공지능 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데이터를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데이터를 가장 혁신적이고 공정하게 활용하는 자가 될 것임을 이 판결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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