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과잉 건강검진에 대하여

불안을 매매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건강

by 날개

한국의 직장인에게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건강검진은 일종의 통과의례다. 전날부터 시작되는 금식과 당일 아침 병원 복도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환복한 사람들의 행렬은 마치 거대한 공장의 생산 라인을 연상시킨다. 번호표를 들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며 신체 치수를 재고, 피를 뽑고, 기계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과정은 정밀한 의학적 케어라기보다 표준화된 공산품의 품질 검사에 가깝다. 대다수는 ‘이상이 없다’는 결과지를 받아 들고 안도하며 다시 일 년간의 방종을 허락받지만, 정작 이 육중한 검진 시스템이 누구의 건강을 위해, 어떤 비용으로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체계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한국의 건강검진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저비용·고효율의 밀집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국가 주도의 일반검진과 대형 병원의 수익 모델인 종합검진 패키지가 결합한 결과다. 특히 MRI나 CT 같은 고가의 정밀 영상 장비가 건강검진 항목에 기본값처럼 포함되는 현상은 의학적 타당성보다 경제적 논리가 앞서 있다는 방증이다. 보건의료 현장에서는 증상이 없는 저위험군에게 시행하는 전신 스캔이 오히려 ‘위양성(진짜 병이 없는데 있다고 판정되는 경우)’을 양산하여 불필요한 공포를 조장하고 추가적인 과잉 진료를 유도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국립암센터 등 전문가 집단은 증상이 없는 일반인에게 췌장암 CT나 펫시티(PET-CT) 검사를 권고하지 않지만, 시중의 ‘VIP 패키지’에는 빠지지 않고 포함된다.


데이터는 한국의 검진 열풍이 과잉 진료의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100만 명당 CT 보유 대수는 약 42대, MRI는 36대로 OECD 평균을 상회하며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검사 건수 역시 압도적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선 노출이다.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매년 찍는 복부나 흉부 CT는 그 자체로 발암 위험을 미세하게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음에도, 검진 시장에서는 이를 ‘정밀함’이라는 마케팅 용어로 포장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고가의 장비 가동률을 높여야 감가상각을 이겨내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에, 검진은 가장 확실한 수익 창출의 ‘사업 모델’이 된 지 오래다.


서구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검진 문화는 더욱 특이하다. 영국(NHS)이나 북유럽 국가들은 근거 기반 의학(Evidence-based Medicine)에 따라 효용성이 입증된 특정 연령대와 특정 질환(유방암, 대장암 등)에 대해서만 선별적 검진을 시행한다. 모든 장기를 매년 한꺼번에 훑는 방식은 자원 낭비이자 신체적 위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의료쇼핑이 자유로운 시장 환경과 의료수가 체계의 왜곡이 맞물려 있다. 저수가 체계에서 수익을 보전해야 하는 의사들과, 짧은 진료 시간 대신 고가의 장비 검사로 건강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환자의 불안이 결합하여 ‘공장형 검진’이라는 기형적인 괴물을 만들어냈다.


검진을 대하는 수검자들의 태도 또한 일종의 ‘시험’과 같다. 검진 전 수주 동안 금주와 금연을 하며 신체 수치를 조절하는 행위는 평소의 건강 관리보다 ‘통과’ 자체에 목적을 둔 기만적 행위다. 이러한 ‘벼락치기 건강’은 검진의 본래 목적인 조기 발견과 생활 습관 교정을 방해한다. 검진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면 모든 건강상의 면죄부를 얻은 양 다시 불건전한 생활로 복귀하고, ‘경계치’에 있는 결과들은 대개 별다른 사후 관리 없이 방치된다. 결국 검진은 건강을 개선하는 도구가 아니라, 불안을 일시적으로 잠재우는 소비재로 전락했다.


의료 현장의 불균형은 이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필수의료 분야는 인력난에 시달리는 반면, 큰 위험 부담 없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검진 센터와 영상의학 분야로는 자본과 인력이 쏠린다. 건강보험 재정은 이 거대한 검진 인프라를 유지하는 마르지 않는 샘물 역할을 한다. 국가 건강검진에 투입되는 연간 예산만 수조 원에 달하며, 이는 고스란히 검진 기관의 수익으로 직결된다. 의료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과잉 진료 비판에도 불구하고, 검진 항목이 매년 늘어나고 수가가 높아지는 배경에는 의료 자본의 로비와 시스템의 관성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내시경 검사 과정에서 용종을 제거하는 등의 가시적인 성과가 검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의 회색지대는 넓다. 모호한 결절이나 수치 이상으로 인해 대학병원을 전전하며 재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과 개인의 정신적 피로는 수치화되지 않는다.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한다는 명분은 강력하지만, 그 명분이 병원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방패로 쓰이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현재의 시스템은 환자의 건강 증진보다 의료 기기 산업과 병원 경영의 선순환에 더 충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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