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의 선점을 위해 품격을 배설하는 판교의 경주마들

by 날개

매일 아침 판교역의 아스팔트와 지하 승강장에서는 문명의 외피를 두른 현대인들의 처절한 생존 투쟁이 반복된다. 소위 고학력과 젊은 층이 밀집해 세련된 지성을 상징한다는 이 도시에서조차, 버스가 멈춰 서거나 지하철 문이 열리는 순간 질서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앞사람이 하차 의사를 밝히며 움직이고 있음에도 그 틈을 굳이 비집고 들어가거나, 버스 문이 열리기도 전에 개떼처럼 몰려들어 서로를 밀쳐내면서 먼저 타겠다고 아우성대는 광경은 참담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행태는 물리적 효율이 아니라, 인지적 여유가 완전히 파산한 이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강박 증세다.


이들의 내면을 지배하는 일차적인 기제는 '통제력 상실에 대한 원초적 공포'다. 거대한 자본과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개인들은 일상에서 자율성을 박탈당한 채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하차와 승차라는 지극히 사소한 순간에서라도 주도권을 쥐고 싶어 하는 왜곡된 보상 심리가 발동한다. 남을 밀치고 0.1초라도 앞서 나가는 행위는 그들에게 있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억눌린 자아를 표출하며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을 주는 일종의 '소심한 권력 확인'인 셈이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이는 한국 사회의 '각자도생' 정서가 극단적으로 발현된 산물이다. 우리는 정해진 순서와 절차를 협력적 질서가 아닌 '지체'와 '손해'로 간주하도록 훈련받았다. 타인에 대한 신뢰가 바닥난 사회에서 "내가 먼저 밀고 들어가지 않으면 내 기회를 빼앗길 것"이라는 공포가 상식적인 배려를 압도한다. 아무리 높은 학식과 잘 나가는 회사의 명함을 가졌을지언정, 문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틈을 비집는 이들은 사실 줄을 설 줄 모르는 투쟁적이고 한낱 부속품 같은 생존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행동은 뇌의 인지적 자원이 고갈되었음을 드러내는 지표다. 정상적인 사고 체계를 가진 인간이라면 앞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자신의 도달 시간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뇌는 '앞사람'이라는 변수를 삭제하고 오직 '문'이라는 목표물에만 집착하는 터널 시야에 갇힌다. 타인을 인격체가 아닌 물리적인 장애물로만 인식하는 이 단계에 이르면, 배려와 공감 같은 고차원적 인지 능력은 마비되고 만다. 겉모습은 세련된 도시인이지만 내면은 오직 본능만 남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상태다.


결국 버스와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추태는 효율성을 숭상하는 한국인이 도달한 가장 비효율적인 결말이다. 어차피 같은 문으로 나가고 탈 사람들이 서로를 할퀴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모습은 사회적 비용만 증대시키는 소모적인 난투극일 뿐이다. 1초의 선점을 위해 품격을 포기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화려한 테크노밸리라는 하드웨어와 멀쩡하게 치장한 얼굴 뒤에 가려진 '정신적 빈곤'이다. 여유가 거세된 사회에서 타인은 더 이상 동료가 아닌, 밟고 지나가야 할 경쟁 상대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문 앞에서 펼쳐지는 그 비열한 해프닝은, 사실 "나는 지금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여유가 없으며 타인을 배려할 지능적 토대가 무너졌다"는 비참한 항변이다. 타인의 등 뒤에서 무리하게 몸을 집어넣는 이들의 뒷모습은 당당한 선구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채찍에 쫓겨 앞뒤 가리지 못하고 질주하는 가련한 경주마를 연상시킨다. 그들이 밀치고 들어간 자리에 남는 것은 승리의 쾌감이 아니라 씁쓸한 문명의 민낯뿐이다. 그들이 아낀 그 짧은 시간이 과연 그들의 인생을 얼마나 더 가치 있게 만들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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