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강요하는 ‘현숙한 아내’와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프레임은 견고하다. 하지만 그 프레임이 생물학적 본능의 유효기간까지 제어할 수는 없다. 결혼이라는 배치표 안에서 안정적인 ‘생존 자산’을 확보한 이들이, 왜 밖으로 나와 타인의 ‘판’을 스캔하는 데 그토록 분주한지 그 기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집안의 남편은 이미 수박의 무늬조차 희미해진, 관리되지 않은 ‘호박’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런 그를 매일 마주하며 깎여 나간 시각적 욕망은 밖으로 향하는 순간 폭발적인 ‘유전적 쇼핑’으로 변질된다. 세련되게 관리된 타인의 육체, 날카로운 턱선, 남편에게서는 거세된 지 오래인 알파적 긴장감을 마주할 때 그녀들의 동공은 본능적으로 확장된다. 이것은 단순한 구경이 아니라, "나도 여전히 우월한 것을 감별할 줄 아는 여자"라는 사실을 확인받으려는 처절한 보상 심리다.
역설적이게도 아이를 낳은 후, 이러한 본능은 더 대담해진다. 번식의 의무를 완수한 유전자는 이제 생존을 책임질 ‘하향 지원의 결과물(남편)’을 안전하게 확보했기에, 비로소 시각적 즐거움을 찾아 떠날 자유를 얻는다. 아이를 등에 업고 마트의 매대를 돌면서도, 그녀들의 시선은 유모차 바퀴보다 빠르게 매장 내 ‘우월한 유전자’를 훑는다. 찰나의 생기는 과거에 대한 향수이자, 하향 지원으로 결정된 자신의 건조한 현실에 대한 무의식적 반항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기다리고 있을 독박 육아와 가계부라는 지독한 현실 앞에서, 길거리의 잘생긴 남자는 그녀들에게 잠시 숨 쉴 틈을 주는 산소호흡기다. 남편이 밖에서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는 가짜 훈장으로 자위할 때, 그녀들은 밖에서 ‘시각적 탐닉’을 통해 내면의 결핍을 채운다. 이것이 대한민국 유부남녀가 각자의 족쇄 안에서 서로를 속이며 유지하는 기괴한 평화의 실체다.
우리는 이를 두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만, 사실 그것은 시스템이 통제하지 못한 ‘본능의 단발마’일 뿐이다. 안정이라는 이름의 유리 온실 속에 갇힌 이들이 창밖을 향해 던지는 그 서글픈 시선이야말로, 결혼이라는 거대한 입시판이 남긴 가장 투명한 성적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