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흄'의 인간에 대한 진솔한 철학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철학자들의 생각은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므로, 내면의 우위에 있는 '이성'(reason)으로써, 인간의 열등한 감정, 욕구, 충동, 격정 등을 포함하는 '정념'(passion)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통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솔직히 정념에 압도당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인간의 이성을 신격화하거나 도덕적 이상을 지나치게 높게 잡은 나머지 인간의 모습이 아닌 책 속의 '철인'이나 산속에서의 '도인'의 모습이 되는 순간, 우리와 철학의 거리는 더욱더 멀어져 버리고.만다.
그런데,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연의 모습에 더욱 근접해서 인간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정확히 들여다본 18세기 영국사람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이 있다. 그는 당시엔 독특하고 악명 높았다고 하는데, 그의 경험적이고도 솔직한 주장은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끌리는 힘이 있다. 로버트 애링턴 박사의 해제를 통하여 다가가 본다.
흄은 감정, 욕망, 충동이 인간 행동의 기본적인 '동기'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보다 진지하고 솔직한 시각을 제공했다. 그는 "이성은 정념의 노예일 뿐이고, 또 단지 노예일 뿐이어야만 하며, 이성은 정념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이외 다른 어떤 직무를 탐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성은 정념을 충족시키고 정념의 고통과 좌절을 피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정보들을 우리에게 전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성이 제공한 정보를 통해 주관적인 반응을 결정하게 되므로, 이성은 정보제공 외에 인간의 행위에 대해 할 수 있는 역할은 더 이상 없다.
그가 강조하는 이성의 역할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우리에게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관한 정보를 주는 것이다. 예컨대, 내가 건강하기를 원한다면 운동을 통해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식이다. 이성은 목적을 성취하는 데 최선의 수단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가치를 지니지만, 목적 자체에 대한 물음에는 답을 못한다. 흄은 궁극적 목적인 본재적 가치는 결코 이성에 의해 설명될 수 없고, 오직 정서와 감정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에게 왜 운동을 하느냐고 물어보라. 그는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왜 건강해지기를 원하느냐고 물어보라. 그는 곧바로 질병은 고통을 주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더 이상 질문을 던져 왜 고통을 싫어하는지 그 근거를 알고 싶다고 한다면, 그는 더 이상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궁극 목적이며 다른 어떤 대상을 찾을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욕구하는 것은 그것이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수단이기에 그런 것이다. 그러나 계속 왜 그것을 원하는지 끝까지 분석하게 되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그것 자체를 욕구하는 것은 '인간의 정서 및 감정과 직접 일치하고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오직 이성만으로는 궁극적이고 본래적인 가치를 결코 결정할 수 없다고 흄은 설명한다.
또한, 이성은 그 외에도 정념의 노예인 이성은 정념들이 근거로 삼는 '믿음'의 '진위'를 밝힘으로써 정념에게 봉사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정념들은 자주 정념의 대상에 대한 믿음을 동반하게 되는데, 예컨대 나에게 누군가가 거짓말을 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화를 내거나, 어떤 무리의 사람들이 나에 관한 어떤 음모를 꾸몄다고 믿고 그들에게 분노가 치미는 경우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믿음은 이성의 판단에 의해 거짓인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는 것이므로, 이로써 노예인 이성은 정념에게 봉사할 수 있다.
이러한 흄의 생각은 철학 분야에서는 독특해 보여도, 인간의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결정을 경제적 의사결정에 반영하며 이성적 경제 모델을 넘어서 사람들의 실제 행동을 이해하려는 '행동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나, 심리학 분야에서는 그의 사상이 실험적으로 뒷받침되기도 한다. 또한, 그의 관점은 특히 오늘날 AI의 발전과 놀랍게도 유사한 함의를 지니는데, AI는 인간의 이성을 대체하거나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감정이나 정념이 이끄는 의사결정과 행동의 실현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즉, AI는 인간의 결정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며, 감정의 우위를 그대로 반영하는 기술적 매개체가 된다. 이제는 그리고 앞으로는 더더욱 흄이 말한 '인간의 노예'가 '슈퍼지능'(superintelligence)으로 무한히 진화하여 '주인'과 능력의 균형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이 비인간인 AI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판단을 좌지우지하는 AI에게 '책임성'(Accountability), '투명성'(Transparency), '공정성'(Fairness)을 단지 윤리적으로만 기대하는 것은 극히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