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감옥에 갇힌 '자유'

표현의 자유에 관해 '밀턴'과 '밀'이 우리에게 주는 속삭임

by 날개

'실락원'(Paradise Lost)으로 유명한 시인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과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할 때 많이 언급되는 인물이다. 그들은 같은 영국사람이지만 다른 시대에 살았다. 밀턴이 개인의 사상과 표현에 있어 매우 엄혹한 시절 '불속에서 노래한 예언자'라면, 밀은 자유를 차분하게 과학적으로 분석한 '엔지니어'였다.


밀턴은 검열에 반대하고 사상의 자유를 역설한 연설문인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 A speech of Mr. John Milton for the Liberty of Unlicenc’d Printing, to the Parliament of England)에서 '사상의 자유 시장'(marketplace of ideas)를 제시했다. 그는 거짓된 신앙, 이단, 음란물 등을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진리와 거짓으로 하여금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십시오. 누가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진리가 패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진리의 논박이야말로 거짓에 대한 최선의, 가장 확실한 억압입니다.
Let her and Falsehood grapple; who ever knew Truth put to the worse in a free and open encounter?
- 존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 중 일부분 -


매우 넓은 영역에서 개인의 자유를 주장한 밀은, 밀턴보다는 조금 더 성숙한 방식으로 '자유'를 다루었다. 개인의 자유도 개인의 범위를 넘어 타인이나 사회와 관련이 되고 해악을 가져오는 경우에는 제한될 수 있다는 면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이익과 조화를 추구하였다. 역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미덕으로 삼는 공리주의자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그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자(utilitarian)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제러미 벤담'(1748-1832, Jeremy Bentham)의 추종자이기도 했다. 그의 공리주의적 입장을 국가와 개인 사이의 관계 문제에 적용하여 탐구한 그 유명한 '자유론'(On Liberty)에 대하여, 미국 도덕철학지 로버트 애링턴(Robert L. Arrington, 1938 -2015)의 해제를 통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밀은 각 개인은 폭넓은 활동 영역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국가가 이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타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뿐이라고 한정한다. 밀은 고전적인 자유주의를 표방하면서 대부분의 사회에서의 여론몰이, 무비판적인 대중의 추종, 이를 지키기 위한 개인의 자유 억압으로 이어지는 '다수의 횡포'를 경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본 논문의 목적은 법적인 처벌의 물리적인 힘, 혹은 '여론'이라는 도덕적인 강제 등의 통제 수단을 통해, 사회가 개인을 대우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원리를 밝히는 것이다. 집단의 구성원 중 누군가의 행동의 자유에 간섭하려고 하는 목적 중에 유일하게 정당한 목적은 '자기 방어'를 위한 것뿐이다. 즉, 문명화된 사회의 구성원 중 어느 누구에게 그의 의지에 반하여 정당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개인이 어떤 행위를 하든지 그가 사회에 대하여 책임져야만 하는 유일한 부분은 다른 사람들과 관련되는 부분이다. 오직 자기 자신과 관련되는 부분은 당연히 그의 독립성이 절대적으로 보장된다. 자기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대하여는 각 개인이 주권자이다.


밀이 말하는 '사회가 직접적인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개인의 행위와 영역'은 그의 사상과 표현, 취향과 열망, 다른 개인들과의 연합이다. 즉,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개인적인 삶과 행위의 부분" 또는 "혹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도 다른 사람이 그러한 영향에 대해 자발적으로 명확히 동의한 부분"이라고 그는 말한다. 따라서, 밀의 시각에서는 개인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이를 넘어서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은 제한된다. 다만, 밀이 옹호하는 이 자유는 오직 성숙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만 적용되며, 어린아이처럼 자유롭고 평등한 토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제외된다.


사상의 지유에 관하여 밀은 "만일 단 한 사람을 제외한 인류 전체가 동일한 하나의 의견을 보이고, 그 한 사람만 반대되는 의견을 보인다고 할지라도 인류 전체는 그 사람에게 침묵을 지킬 것을 강요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이는 그 한 사람이 가령 권력을 가진 자라고 해도 인류 전체에게 침묵을 지킬 것을 강요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했다. 밀은 의견을 표현을 억압하는 것은 인류로부터 많은 것을 빼앗아 간다고 보았다. 예컨대, 어떤 사람의 의견이 옳은 경우(한 사회의 의견이 오류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의견이 그르다고 생각하여 그 의견의 표현을 억압하는 경우)에는 그 사회는 그 오류를 바로 잡고 진리를 주장할 기회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며, 어떤 사람의 의견이 그른 경우(한 사회가 믿고 주장하는 바가 참인 경우)에도 자신들의 오류와 정면으로 대결함으로써 진리에 더욱 분명한 인식과 선명한 인상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라며, 표현과 토론의 자유를 강조한다.


그러나, 밀은 이러한 사상과 의견의 표명, 토론의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손실을 입히거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사회가 정당하게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직 행위자 자신만을 손상시키는 행위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행위 사이의 구별이 쉽지 않다는 점인데, 밀은 어느 누구도 완전히 고립된 존재는 아니기 때문에 사회의 한 구성원에 속하는 사람의 행위는 철저하게 다른 구성원의 무관심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에 대하여 중대하고 영속적인 해를 끼치는 어떤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더 많은 범위에 있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그 사회가 선택한 것이므로 개인은 이를 감수하여야 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행위의 원인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안 된다고 역설한다. 그는 "어떤 개인도 단지 술이 취했다는 사실 때문에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군인이나 경찰관이 근무 중에 취했다면 그는 직무상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는 예를 들어 이를 설명한다.


밀턴과 밀의 생각을 가지고 오늘날 우리의 디지털 시대로 되돌아와 보자. 표현의 자유는 무한정 인정되는 것이 아니고 분명한 한계점이 있다. 이는 우리 헌법을 통해 확인되며, 법체계를 통하여 구현되어 있다. 그런데, 단지 '중개자'인 온라인 플랫폼은 밀이 말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방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플랫폼은 현대판 '아레오파고스'(Areopagus; 고대 아테네의 언론 광장)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몇몇 공룡들이 주관하는 거대한 상업 시장에 가깝다. 과거 밀턴이 진리와 거짓이 자유롭게 겨루는 것을 믿었듯, 디지털 공간에서도 정보와 아이디어는 자유롭게 흐를 때 가장 건강한 법이다. 그러나, 진리가 검색 알고리즘에 밀리고, 거짓이 클릭 수를 먹고 자라는 세상에서는, 아무리 참인 '진리'도 돈과 권력, 광고와 스폰서 없이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또한, 밀은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자유'를 사회가 건전하게 작동하고 발전하는 동력이 원천으로 보았지만, 오늘날 온라인 플랫폼은 그 자유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몇몇 공룡이 설계한 폐쇄형 생태계가 되어 그 정상작동을 방해하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 만약, 자유로운 표현과 사상의 경쟁이 거대한 독점 플랫폼 안에서 자의적으로 편향된 기준에 따라 걸러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상의 자유 시장이 아니라 우리는 미셀 푸코의 '판옵티콘'(Panopticon)에 갇히게 된다. 개인이 아닌 새로 등장한 감시자가 타인에 대한 해악을 사회에 끼치고 있는 것이다. 밀은 오늘날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싶다면 '경쟁의 자유'를 먼저 확보하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Panop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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