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척추를 다시 일으켜 세우다

by 날개

술기운에 함몰된 자아는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다. 어제의 객기와 오늘의 고통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우리를 억지로라도 일으켜 세우는 것은 '출근'이라는 사회적 약속이다. 지옥 같은 지하철 인파에 몸을 싣고, 모니터 앞의 딱딱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행위는 고역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물리적인 구속이 흐트러진 내면의 기강을 잡는다.


직업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척추'다. 숙취로 흐릿해진 초점을 다시 서류와 글자에 맞추고, 동료들과 일상의 언어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서서히 비인간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생환한다. 규격화된 업무 시간과 정해진 역할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마 침대 위에서 어제의 후회만을 씹으며 더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았을지도 모른다.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 억지로라도 정신을 차리고, 캐모마일을 우려내며 사유의 조각들을 맞춰가는 과정은 일종의 재활 훈련이다. 무념무상의 지루함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이 '척추'가 우리를 지탱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사치였다. 비로소 몸과 마음이 영점을 되찾으면서, 명징한 정신을 가진 사회인으로 복귀한다.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면서도 우리가 매일 이 척추를 곧게 펴고 앉아 있는 이유. 그것은 이 단단한 뼈대가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는 다시 '인간답게' 세상을 직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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