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지독하리만큼 물신주의적이다. 형법상 문서에 관한 죄에서 정의하는 '문서'란 문자 또는 이에 대신할 수 있는 가독적 부호로 계속적으로 물체상에 기재된 의사 또는 관념의 표시를 의미한다(대법원 2006. 1. 26. 선고 2004도788 판결). 여기서 핵심은 '물체상에 기재된 계속성'에 있다. 우리가 온종일 응시하는 모니터 속 이미지는 법의 눈에 그저 찰나의 전자기적 유희에 불과하다. 대법원은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지가 이미지 파일을 보기 위한 프로그램을 실행할 경우 그때마다 전자적 반응을 일으켜 화면에 나타나는 것에 지나지 않아서 계속적으로 화면에 고정된 것으로는 볼 수 없으므로, 형법상 문서에 관한 죄에 있어서의 '문서'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7도7480 판결). 결국 정교하게 합성된 신분증 파일을 모니터로 보여주며 타인의 눈을 속이는 행위는, 이 보수적인 법체계 안에서 기묘한 면죄부를 얻는다. 그것은 위조된 문서가 아니라 단지 위조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존재하는 형법 제232조의2 사전자기록위작죄 역시 디지털 범죄의 교묘함을 다 잡기엔 역부족이다. 해당 조항은 사무처리를 그르치게 할 목적으로 권리·의무 또는 사실증명에 관한 타인의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위작 또는 변작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판례는 이 전자기록의 범위를 매우 엄격하게 제한한다. 전자기록은 그 자체로서 객관적·고정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서 쓰임으로써 예정된 증명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어야 한다(대법원 2005. 6. 9. 선고 2004도6132 판결). 만약 포털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한 이미지 파일을 개인 컴퓨터에서 포토샵으로 수정했다면, 법원은 이를 '타인의 전자기록'을 위작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이미 내 저장장치에 담긴 순간 그것은 시스템 운영 주체의 사무처리와 무관한 파편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논의의 핵심 지점은 "인쇄"라는 물리적 행위에 있다. 모니터 화면으로 보여줄 때는 무죄였던 것이, 프린터의 잉크를 빌려 종이 위에 고착되는 순간 비로소 문서라는 법적 육신을 얻는다. 무형의 데이터가 종이라는 물리적 실체에 안착하는 찰나, 법은 비로소 잠에서 깨어나 징벌의 칼날을 휘두른다. 화면 속에서는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던 0과 1의 조합이 종이 위로 내려앉는 순간 중범죄의 증거로 돌변하는 이 아이러니는, 현대 법체계가 여전히 아날로그의 중력 안에 갇혀 있음을 폭로한다. 사라져버리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이 고답적인 법리는, 역설적으로 디지털이라는 가벼운 토양 위에 쌓아 올린 현대인의 신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증명하고 있다. 법이 빛의 잔상을 문서로 인정하지 않는 사이, 정의는 픽셀과 종이 그 어딘가 미궁 속에서 길을 잃고 표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