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기형적인 풍경은 거리의 무례를 넘어, 지성의 최전선이어야 할 조직 내 권위주의 구조 속에서 더욱 정교하게 반복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극은 존경할 만한 ‘진정한 권위’가 사라진 자리에, 오직 권력에 기생하는 ‘예스맨’들이 새로운 권위로 군림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당한 학문적 성취나 치열한 고뇌보다는 지식 권력의 줄에 매달리는 행위, 자신의 주관을 거세한 채 상급자의 비위를 맞추는 처세가 성장의 보증수표가 되는 현실은 이 사회의 병폐가 어디서부터 뿌리 깊게 시작되었는지 짐작게 한다. 이는 모든 가치를 화폐 단위로 환산하며 인격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치와 철학이 실종되고 오직 '성공'이라는 결과물만이 유일한 선(善)으로 추앙받는 서글픈 단면이다.
이러한 권위주의 구조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몸만 큰 청소년기'에 머물러 있음을 증명하는 증거다. 실력과 인품을 갖춘 권위가 부재한 카르텔 속에서, 구성원들은 독립된 인격체라기보다 권력을 공고히 하는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자신의 의견을 죽이고 맹목적인 순종을 선택한 이들이 더 빠르게 주류가 되는 구조적 모순은 결국 합리적 비판이 불가능한 집단적 마비 상태를 초래한다. 이는 과거 억압적 질서 아래 내면화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굴종의 습속이 현대적 자본 논리와 결탁한 결과이기도 하다. 돈과 지위가 인품과 예의를 압도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토양 위에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권력의 그림자에 숨어 안위를 보장받으려는 식민지적 근성은 우리가 아직 진정한 시민으로 진화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결국 사회 전반에 흐르는 피해의식과 갈라치기, 그리고 약자라는 가면을 쓴 권리 주장은 이러한 상층부의 부조리한 질서와 거울처럼 닮아 있다. 정상이 비정상에 의해 덮이고, 실력보다 줄 서기가 보상을 독점하는 질서는 권위 없는 권위에 기생하여 정당한 노력을 비웃는 이들이 승리하는 구조에서 완성된다. 지성의 요새라 불리는 곳조차 맹목적인 순종과 자본의 논리를 미덕으로 삼는 사회에서, 거리의 시민들에게 성숙한 사과와 존중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가짜 권위라는 썩은 줄에 매달려 자아를 방기하는 이들과, 타인의 권리를 짓밟으며 자신의 불편만을 포효하는 대중은 결국 한 몸으로 엉켜 한국 사회라는 거대한 결핍의 병동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