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공의존 상태에 관하여
한국 사회라는 거대한 정신병동에서 개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역설적이게도 '인격의 포기'다. 이 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선택하는 타협과 수용은 사실 성숙한 적응이라기보다, 부조리에 눈을 감는 대가로 안위를 보장받는 거래에 가깝다. 거리에서 무례를 마주해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자리를 피하고, 조직 내에서 비상식적인 권위 앞에 '예스맨'을 자처하는 행위는 합리적인 생존 전략으로 둔갑한다. "어쩔 수 없다"는 체념 섞인 수용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비겁함을 '현실 감각'이라는 세련된 용어로 포장해 줄 뿐이다.
이러한 타협의 기저에는 모든 관계를 손익계산서로 치환하는 가성비의 논리가 깔려 있다. 타인의 발을 밟았을 때 정중히 사과하는 수고로움보다 모른 척 지나가는 편의를 택하고, 정당한 목소리를 내어 시스템을 바꾸기보다 권력의 줄에 올라타는 효율을 쫓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자아는 파편화된다. 공공장소에서는 철저히 타인을 배경 취급하며 익명성 뒤에 숨고, 서열 앞에서는 자존감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분열적 생존 방식이 이 기형적인 틀을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 결국 우리가 수용한 것은 사회적 질서가 아니라, 무례와 부조리가 지배하는 '아수라장'에 동조하겠다는 항복 선언이다.
결국 타협과 수용으로 완성된 평화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위태로운 휴전에 불과하다. 각자가 자신의 불편만을 절대적 권리로 여기며 '약자 코스프레'와 피해의식 뒤로 숨어버리는 현상은, 더 이상 양보할 공간이 없는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존중받지 못하는 권위와 책임지지 않는 개인들이 맺은 이 기괴한 계약은, 서로를 증오하면서도 결코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공의존(Codependency) 상태를 낳았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이 비극적인 적응 끝에 남는 것은, 인간다운 품격을 잃어버린 채 몸만 어른이 된 아이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