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할 줄 모르는 한국인과 배려라는 이름의 폭력

by 날개

타인의 뒤꿈치를 밟아 신발을 벗겨놓고도 사과 한마디 없이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무심함은 오늘날 한국 도시의 흔한 풍경이 되었다. 밀집된 지하철 안, 감자칩의 기름진 냄새와 소음을 흩뿌리며 주변의 시각적·청각적 공해를 아랑곳하지 않는 여고생들의 소란은 공공장소의 공유 가치가 어디까지 추락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무례함이 만연한 공간에서 개인은 인격체로 존중받기보다 치워야 할 적치물로 전락한다. 사과할 줄 모르는 개인들이 모여 형성된 이 집단적 풍경은, 경제적 풍요를 이룩했음에도 정신적 성숙을 이루지 못한 채 몸만 비대해진 ‘기형적 청소년기’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사회의 갈등은 ‘배려’라는 가치가 기형적인 ‘권리’로 변질되면서 더욱 심화된다.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논란처럼, 상호 양해와 선의의 영역에 머물러야 할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행사해야 할 권리가 되고 타인에게는 강요된 의무가 될 때 공동체는 파열한다. 특히 실질적인 약자가 아닌 이들이 ‘약자 코스프레’를 통해 보호의 외피를 두르고 목소리를 높이는 현상은, 성실하게 질서를 지키는 시민들에게 오히려 역차별적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배려가 당연한 전유물이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이 된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각자의 결핍을 타인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보상받으려는 심리적 병증이 깔려 있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설정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 의무로부터 면죄부를 받으려는 시도는 사회 전체를 거대한 정신병동으로 몰아넣고 있다. 공유된 윤리와 존중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자기 권리만을 외치는 우악스러운 목소리만이 남는다. 타인의 발을 짓밟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그 뻔뻔함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공정이나 정의를 논하는 것은 공허하다. 비정상이 정상을 잠식해 버린 이 개판의 연쇄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서로를 증오하며 각자의 고립된 섬에서 불행을 키워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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