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법 망치는 8가지 방법

론 풀러의 '법의 내적 도덕성'의 중요성

by 날개

법조문의 내용이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지 않고, 어떤 행위를 금지하는지 모호해서 예측하기 어렵고, 이 법을 지키면 저 법을 위반하게 되거나, 법이 하도 '조변석개'하여 도대체 법을 지키기가 도무지 어려운 그런 사회, 즉 법체계가 '누더기'와도 같은 그런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이상하게도 남의 얘기같이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법은 단지 권위나 명령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준을 충족해야만 법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주장한 미국의 자연법학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론 풀러'(Lon Fuller, 1902-78)이다. 그의 생각을 Raymond Wacks 교수의 시각을 일부 참고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풀러는 법을 '내적 도덕성'(internal morality of law)으로 간주하는 '세속적 자연법'(secular natural law)의 접근법을 발전시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즉, 법체계는 '인간의 행위를 규칙의 지배에 따르게 하는 것'이라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법과 도덕 사이의 연관성은 필연적이다. 풀러는 가상의 왕 렉스(Rex)가 법체계를 만드는 데 망하게 된('bites the dust') 여덟 가지 비법(?)을 소개한다.


(1) 규칙을 전혀 만들지 않고 모든 사안을 임시방편적으로 결정함

(2) 신하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공표하지 않음

(3) 소급입법을 제정하여 입법권을 남용함(월요일에 합법적이었던 행위를 화요일에 불법으로 만듦)

(4) 규칙을 이해할 수 없음

(5) 모순되는 규칙을 제정함

(6) 해당 당사자의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를 요구하는 규칙을 제정함

(7) 규칙을 너무 자주 변경하여 수범자가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지 못함

(8) 발표된 규칙과 실제 행정 사이에 일치하지 않음


불운한 왕 렉스는 풀러의 여덟 가지 원칙을 철저하게 반대로 지켜서(?)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 이 여덟 가지 원칙들에서 반면교사하여 법이 효과적이고 도덕적으로 집행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기준을 도출할 수 있는데, 이를 충족하지 않는 법은 정당성을 잃게 된다. 즉, 풀러는 법체계가 이 원칙 중 어느 하나에 부합하지 않거나 여러 가지에 실질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에 '법'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단정한다. 법이 지켜야 할 여덟 가지 바람직한 원칙('desiderata')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Generality(일반성)

법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타깃으로 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함

2. Promulgation(공표성)

법은 공식적으로 공표되어야 하며, 사람들이 알 수 있어야 함

3. Non-retroactivity(소급금지)

법은 과거에 대한 규제를 하지 않으며, 새로운 법은 앞으로의 사건에만 적용함

4. Clarity(명확성)

법은 모호하지 않고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하며,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함

5. Non-contradiction(모순금지)

법은 자기 자신과 모순되지 않아야 하며, 법 규정 간에 일관성이 있어야 함

6. Possibility of compliance(준수 가능성)

법은 실제로 사람들이 지킬 수 있을 정도여야 하며, 준수가 불가능한 법은 법적 효력이 없음

7. Constancy(지속성)

법은 일관되게 시행되어야 하며, 빈번한 변경이나 수정이 있어서는 안 됨

8. Congruence between declared rule and official action(선포된 규칙과 공공 행위의 일치)

공포된 법은 공공 기관의 행위와 일치해야 하며, 행정 당국의 실행이 법과 부합해야 함


그러나, 일부에서는 풀러의 원칙을 실제적으로 충족하기만 하면 사악한 법체계도 용인될 수 있는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이 원칙들은 사실 엄밀히 보면 그렇게 충족하기 어려운 기준은 아니고 절차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이 대부분이어서, 근원적인 도덕적 기준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실제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차별적인 인종 차별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악법('Apartheid') 체계를 제정하고 시행하는 데에 있어 이러한 절차적 형식을 따르려고 했다고 한다. 물론, 법적인 절차를 준수만 해서는 그 법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Wacks 교수의 지적은 합당하다.


우리나라 경쟁법인 공정거래법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법적 규제체계이다. 하지만, 디지털 경제에서 온라인 플랫폼의 시장지배력 지위남용과 불공정거래 행위 등은 전통적인 경쟁법 규제 방식으로는 처리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도입하는 논의가 진행 중인데, 풀러의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분야에 대한 규체체계는 전반적으로 일관성과 통일성을 기본으로 하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명확성을 통해 예측가능하여야 하며, 수범자가 준수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이러한 내재적 도덕성이 확보되지 못하는 규제는 아무리 그 궁극적 목적이 사회적 합의를 거친 정당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법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은 물론,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입법자들과 경쟁당국은 풀러의 테스트를 관련법 규체체계 전반에 옵션이 아닌 기본사양으로 적용하여 이를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집행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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