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의 미학
산길에서 마주치는 이들에게 남은 거리를 물으면 열에 아홉은 "거의 다 왔다"라고 답한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이들에게 그 말은 구원이자 지독한 희망고문이다. 실제로 그 '거의'를 지나기 위해 몇 번의 굽잇길을 더 돌고 무릎이 삐걱거리는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무책임한 말 한마디에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맨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우리를 걷게 하는 동력은 어쩌면 이런 다정한 기만들의 합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언제 마침표가 찍힐지 모르는 불확실한 여정이다. 정상까지의 거리가 정확히 숫자로 표기된 이정표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남은 생의 거리를 소수점 단위까지 정확히 안다면, 그 명징한 데이터 앞에서 우리는 도리어 마비될 것이다. 끝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불안이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자기 최면을 허락한다. 이 희망고문은 잔인하지만, 그것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다.
그러나 정상을 향한 '거리'에만 매몰될 때, 삶은 목적지의 노예가 된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만이 의미라면, 도달한 이후의 삶은 그저 관성적인 하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 다 왔다는 것이 반드시 축복일 리도 없다. 끝이 가까워졌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소진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도착의 안도감이 아니라, 그 막막한 과정 자체를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있다. 가쁜 숨을 고르며 마신 찬물 한 모금의 감촉, 발끝에 차이던 돌멩이의 소리, 모퉁이를 돌 때마다 조금씩 각도를 바꾸던 풍경들. 그 찰나의 감각들이야말로 진짜 생(生)의 실체다.
인생의 남은 길이를 재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거의 다 왔다"는 스스로의 최면을 빌려, 지금 딛고 있는 이 거친 지면을 충분히 음미하는 것뿐이다. 다 왔다는 안도감보다, 아직 갈 길이 남았다는 그 불투명함 속에 오히려 삶의 야성이 숨 쉬고 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당신이 지금 통과하고 있는 그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과정이, 당신이 그토록 닿으려 했던 정상 그 자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