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4'

by 날개

우리는 엘리베이터의 '4층' 대신 'F'를 누르며 안도한다. 한자어 '사(四)'와 '사(死)'의 발음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숫자 4는 동양권에서 수천 년간 죽음의 낙인이 찍힌 채 유배당해 왔다. 누군가는 이를 단순한 미신이나 언어 유희라 치부하지만, 여기에는 인간이 불운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아주 지독한 본능이 숨어 있다. 실체가 없는 '죽음'이라는 거대한 공포를 특정 숫자 하나에 가두어버림으로써, 그 숫자만 피하면 죽음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만적 위안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서구권으로 눈을 돌리면 숫자 4의 위상은 정반대다. 그들에게 4는 동서남북의 방위,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 그리고 지·수·화·풍의 4원소를 상징하는 '완전함'과 '안정'의 숫자다. 세상의 기틀을 잡는 가장 단단한 숫자가 유독 우리 곁에서만 불길한 징조로 떠도는 것은, 결국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얼마나 언어라는 편견에 종속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숫자 4를 죽인 것이 아니라, 4라는 숫자 속에 우리의 불안을 가둬두고 있었을 뿐이다.


진짜 잔인한 것은 숫자 4가 아니라, 모든 것을 불운의 탓으로 돌리려는 우리의 나약한 심리다. 사고가 나면 4층이라서, 일이 안 풀리면 4일이라서 그렇다는 핑계 뒤에 숨어 우리는 진짜 원인을 마주할 기회를 놓치곤 한다. 죽음은 숫자에 깃드는 것이 아니라 생의 끝에 늘 존재하는 필연이다. 숫자 4를 지운다고 해서 죽음이 사라지지 않듯,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불길한 숫자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나태함 그 자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4월은 왜 잔인한 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