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을 피하는 분노의 글쓰기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칼 한 자루씩을 품고 산다. 부당한 서비스를 받았을 때, 혹은 누군가의 비도덕적인 행태를 목격했을 때, 우리는 '공익'이라는 이름의 칼을 휘둘러 그를 사회적으로 단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칼끝이 언제나 상대를 향하는 것은 아니다. 세련되지 못한 문장은 '명예훼손'이라는 형사 처벌의 부메랑으로 돌아와 경찰서를 들락거려야 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명예훼손의 지뢰밭을 피하는 첫 번째 기술은 '사실'을 '의견'의 옷으로 갈아입히는 것이다. 우리 법은 허위 사실은 물론이거니와 증거에 의해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사실의 적시'도 처벌한다. 예컨대 "이 식당은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를 쓴다"는 문장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전형이다. 반면 "내 입맛에는 재료의 신선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쉬웠다"는 문장은 주관적인 평가, 즉 의견의 영역에 머문다. 주관적인 감상은 입증의 대상이 아니기에 처벌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 비판하고 싶다면 문장의 주어를 '나'로 바꾸고, 서술어를 '나의 느낌'으로 한정해야 한다.
두 번째 방어막은 형법 제310조가 보장하는 '위법성 조각'의 마법을 부리는 것이다. 설령 사실을 적시했더라도 그것이 진실이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법은 처벌을 멈춘다. 여기서 핵심은 비방의 욕구를 공익의 언어로 세탁하는 기술이다. 판례는 특정 집단의 관심사도 공익으로 폭넓게 인정한다. "이 사람을 망신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소비자들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정보를 공유한다는 프레임을 글의 전면에 배치하라. 이때 조롱이나 욕설이 단 한 마디라도 섞이는 순간, 법원은 이를 공익이 아닌 '비방의 목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건조하고 드라이한 팩트만이 가장 치명적이고 안전한 방패가 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이 방패는 오직 '진실'일 때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만약 적시한 내용이 허위사실로 밝혀진다면 공익성이라는 방패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가중 처벌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을 마주하게 된다. 허위사실 적시는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영역을 완전히 벗어난 '인격 살인'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를 옮기는 행위는 스스로 방패를 버리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다.
특히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은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인터넷의 특성 때문에 일반 명예훼손보다 훨씬 무겁게 다뤄진다. 하지만 여기에도 틈새는 있다. 바로 '비방할 목적'이 입증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작성자가 그 정보를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확인되지 않은 커뮤니티의 찌라시를 그대로 옮기는 행위는 이 상당성을 인정받지 못해 유죄로 직행하는 지름길이다.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면, 최소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 노력했던 흔적이라도 남겨두어야 한다.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면, 최소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 노력했던 흔적이라도 남겨두어야 한다. "난 몰랐다"는 변명보다 "확인하려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가 당신을 구원할 것이다.
결국 법적 리스크를 피하는 요체는 '분노의 필터링'에 있다. 명예훼손은 입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을 막는 것은 문장의 기술이다. 사실을 말하되 그것을 '입증해야 할 숙제'로 남겨두지 말고 나의 '불편함에 대한 기록'으로 치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개인적 원한이 아닌 공동체의 안전을 위한 정보의 흐름으로 문맥을 설계하는 것이 좋다. 분노의 배설을 하는 글을 쓸 때는 자신의 글을 해체해 보는 태도, 그것이 표현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스스로를 감옥으로부터 지키는 생존 전략이다. 끄덕여지는 뜨거운 문장 뒤에는 언제나 차가운 장치가 숨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