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자고 나면 조금 나아질거야

by 날개

대한민국 사회는 끊임없이 일등을 요구한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일류 대학', '일류 직장', '일류 인생'이라는 말에 익숙하게 노출되어 왔다. 어느 나이에 어느 특정 허들을 넘지 못하면, 뭔가 미완성된 삶으로 치부된다. 이러한 모든 기준은 내가 아니라 부모나 사회 등 타인 기준이다. 자연스럽게 남들처럼 혹은 그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이 내면에 뿌리내렸고, 그것이 우리의 자존감과 자아 형성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현실에서 일류나 일등의 자리는 극히 일부에게만 허락된다. 그 결과 다수는 낙오자가 되거나, 그렇게 느끼게 된다. 그 누구도 낙오하지 않았고, 모두가 자기 삶의 고유한 속도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이 사회는 끊임없이 줄 세우고 분류하고 순위를 매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평가절하하고, 불만과 불안에 사로잡혀 채 우울감과 무력감에 빠져든다.


우울함의 가장 뿌리 깊은 이유는 비교다. 우리는 항상 타인을 기준으로 자신의 현재를 판단한다. 누군가는 “인간은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며 안도감을 느끼는 가장 잔인한 동물”이라고 했지만, 이 사회는 오히려 ‘자기보다 나은 사람’만을 보여준다. SNS 속 타인의 삶은 화려하고, 성공은 곧 부와 명예에 대한 타인의 인정으로 포장된다. 평범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취급되고, 조용히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사회의 조명 옆 그림자로 지워진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주목받지 못하면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긴다. 실패하지 않았음에도, 실패했다고 믿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특히 체면과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별난 사람’ 취급을 당하기 일쑤고, 기준에서 벗어나면 금세 배제당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다. 그렇기에 자존감은 쉽게 무너지고, 낮은 자존감은 결국 무기력과 회피로 이어진다. 아무리 개인이 노력해도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 굴레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인생의 기초를 세워야 하는 2030 세대에게 이 현실은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갈 길은 보이지 않고, 세상은 너무 빠르게 흘러만 간다. 초조함은 현실을 더욱 벼랑처럼 만든다. 뭔가 한방을 꿈꾸게 되고, 단번에 인생이 빛나길 갈구한다.


그런데, AI와 디지털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동시에, 또 하나의 경쟁 구도를 만들어낸다. 데이터와 기술은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그것을 활용할 기회는 자본과 권력을 가진 소수에게 집중된다. 결국 기술마저도 인간을 더 정교하게 통제하고 감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욱 무력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나는 뭘 해도 안 될 것 같다’는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위협적으로만 다가올 때, 오히려 중요한 것은 거대한 세계가 아니라, 작고 사적인 세계다. 하루를 버텨낸 나, 지금 숨을 쉬고 있는 나, 내일을 꿈꾸는 나—이 소중한 개인의 감정을 돌아보는 일이야말로 진짜 삶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삶의 기준을 외부가 아닌 내 안에서 세울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은 이렇게 말했다. “불행은 실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기준을 내 것으로 삼는 데서 온다.” 이 말은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거울삼아 살아가는 한, 절대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족은 늘 한 발 앞에 있고, 행복은 남이 정한 목표를 따라갈수록 멀어진다. 그러니 때때로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도 괜찮다고, 조금은 이상한 사람처럼 보여도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는 너와 내가 필요하다. 사회 전체가 바뀌지 않더라도,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말해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희망의 불씨가 된다.


우리는 모두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다. 지금 부족하다고 느껴져도, 그건 단지 한 시기의 감정일 뿐이다. 삶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누군가는 빠르게 걷고, 누군가는 천천히 걷는다. 중요한 건 그 길 위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 어두운 밤하늘을 걷는 별빛일지도 모른다. 같은 속도로 같은 밝기로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 잠시 가려진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나만의 궤도를 따라 유유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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