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좋아하는 길을 끝까지 걸어

by 날개

우리나라의 공기에는 오래된 것들이 남아 있다. 군사정권의 잔재는 아직도 권위주의적 문화를 지탱하고 있고, 유교적 위계는 수평적 공동체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나이가 중요하고 사회적 직함이 중요하고 서열이 중요하다. 개인은 목소리를 내기보다 ‘맞춰야’ 하고, 논쟁에서는 논리적인 설득보다 얼굴이 두껍고 목소리 큰 것이 무기다. 국민의 참여와 의식 수준은 어느덧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지만, 정치의 구조는 그에 따르지 못했다. 법은 강한 자에게 특별히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하다. 선거철이면 국민과 민생을 말하던 이들은 권력을 잡은 뒤에는 돌변하여 민생의 숨통을 죄고 군림하려고 든다. 공공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의 사리사욕이 자리를 잡는다. 어떤 시대에는 ‘애국’이, 어떤 시대에는 ‘개혁’이 정치의 외피가 되었지만, 그 알맹이는 여전히 자기 이익과 생존의 논리다. 직업정치인이 철인의 가면을 쓰고 미디어에 등장한다.


기득권의 카르텔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정치, 재벌, 언론이 교묘하게 얽혀 서로를 보호하고, 불편한 진실은 침묵하거나 덮는다. 잘못된 일에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고, 애먼 사람이 책임을 뒤집어쓰고 사라진다. 권력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말은 그저 이상론으로 치부된다. 그 사이 사람들은 점점 무력해진다. ‘희망’이라는 말은 선거 구호로 소비되고, ‘정의’는 일상에서 전혀 체감할 수 없다. 이상을 말하면 현실을 모른다 하고, 구조를 비판하면 패배주의로 몰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더 이상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이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지배 논리는 자본이다. 능력과 성취, 존중의 기준은 결국 돈으로 환원된다. 철학, 문화, 예술, 사색은 살만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입을 닫는다. 철학적 질문은 사치로 여겨지고, 생존을 말하는 순간 공감은 차단된다. 생존을 말해야 하기에 꿈을 접는 사람이 생기고, 꿈을 말하는 순간 현실을 모른다고 비난받는다. 그렇게 삶은 점점 각박해지고, 일상의 언어는 분노와 냉소로 채워진다. 편법은 일상이 되고, 반칙은 전략이 되며, 정의는 유효기간이 지난 시쳇말이 된다. 이런 현실에서 사람들은 묻는다. “우리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가?”


사람들은 불공정에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그 구조에 적응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좋은 집안에 태어난 것도 능력이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다.” 체념은 곧 질서가 되고, 무력함은 개인의 탓으로 돌아온다. 불평등은 해결되지 않고,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 가난은 게으름으로, 분노는 피해의식으로, 저항은 유난으로 치부된다. 세상을 고치기보다, 자신을 포기하는 쪽이 더 빠르고 효율적이라고 여겨지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정의는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말이, 어느새 우리 모두에게 정답이 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말한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견뎌내라.” 살아남기 위해 말 대신 침묵을 택하고, 질문 대신 순응을 택한다. 그러나 그런 선택은 단지 회피나 나약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 사회가 사람들에게 부여한 생존에 필요한 조건이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사람일수록 오히려 체념하여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절망을 소리 내기보다 조용히 이겨내는 쪽을 택한다. 그러나 그 조용한 침묵 속에서조차 사람들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있을 것이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서 견디고 있는가.” 질문이 멈추지 않는 한,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은 당장은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거대한 구조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향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말했다. “진정한 용기란, 의미 없는 세상 속에서도 의미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우리는 완전한 진실이나 절대적인 정의를 가질 수 없을지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태도’만큼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남이 만든 기준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기를 살아 있게 만드는 무언가를 향해 걷는 여정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그런 삶은, 당장의 성공보다 더 오랜 시간 견디는 힘을 준다.


사방이 막혀 보일 때, 우리는 여전히 ‘한 방향’을 향해 걸을 수 있다. 누군가의 응원 없이도, 박수 없이도, 그래도 멈추지 않는 걸음.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 가장 조용하지만 단단한 저항이다. 그리고 그 저항은 어느 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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