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혁신아카데미 네 번째 글 / 교사로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요
혁신,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
개교학교에 지원한 것은 이전에 있었던 어떤 학교를 닮은 학교가 아닌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의지 때문이었다. 앞선 혁신학교의 운영 체제나 교육과정 사례를 참고하는 것은 당연했지만 누군가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우리 학교에 모인 새로운 사람들이 함께 논의하고 합의한 것을 실현해 가는 과정을 기대했다.
교직 생활 20년이 넘도록 경험하지 않은 것들이기에 나는 그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를 ‘하고 싶은 말 많고 원하는 대로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선생님들도 많을 것 같지만 나 스스로는 ‘누군가 하는 것을 따라가기 바빴던’ 5년이었다.
바라고 원하던 혁신학교 00에서 마주한 모든 것은 새롭고 낯설고 어려웠다. 지금도 어렵다.
함께여서 가능했던 것
하나/업무전담팀
개교 첫 해에는 난생처음 ‘업무팀’을 해보았다. 업무팀을 자원했지만 할 줄 알아서 한 것이 아니었다. 부장 경력은 교직경력 20년 중 2년이 전부였다. 업무 역시 내가 할 줄 아는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업무팀 선생님들과 4인 체제로 조정한 결과로 배정되었다. 개교 학교에 없는 것들 채우랴, 해야 할 업무 파악하랴 퇴근 시간은 잊고 지내야 했다. 업무팀을 함께 하는 선생님들과 합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웠다. 내가 업무 담당자니까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다른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같이 하는 거잖아요. 다모임에서 의논하고 결정 나는 대로 하면 돼요. 일반학교 업무부장에 비하면 훨씬 쉽지 않아요?”
낯선 사람들 속에서 어려운 것 투성이었지만 믿을 것은 ‘배우고 나누는 선생님’이 되자고 했던 동료들이었다. 무엇이든 함께 하고 모르는 것은 물어 가며 천천히 가면 되는 것이었다.
둘/ 수업 준비 함께 하기
담임을 하게 되었을 때도 내 옆에는 먼저 혁신학교를 경험한 선생님들이 있었다. 수업을 어떻게 할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언제 그런 이야기를 했나 싶게 수업 계획이 문서로 좌르륵 정리되어 나온다. 수년간 경험한 교육활동을 보물상자에서 보물 꺼내듯 끊임없이 풀어 놓는 선생님들을 보면 ‘나는 그동안 뭘 했나.’ 싶으면서 놀랍기까지 하다. 교육과정 재구성을 위한 협의 시간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내가 뭘 생각해 내기보다는 오고 가는 내용을 접수하기에 바빴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멍해지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차츰 그 시간에 익숙해지면서 이전에 했던 내 수업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스쳐 가기도 하지만 선뜻 생각을 꺼내 놓기는 어려웠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자리에서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수업 계획을 공유하는 멋진 새내기 후배 교사도 있었다.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선배 노릇 못하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지만, 혁신학교의 일원으로 날마다 채워져 가는 시간이 그저 좋았다.
셋/ 재구성, 새로운 수업
해를 거듭하면서 함께 수업을 준비해 가는 과정에 점점 익숙해졌다. 문서로만 접하던 ‘혁신학교의 재구성 수업 계획’이 눈에 익숙해졌고 교실에서 하나하나 나도 실현해 가고 있었다. 차츰 나의 경험을 꺼내 놓기도 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나 둘 추가해 가는 경험을 하고 나니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더 하고 싶어졌다. 초등교사 대부분이 가입해서 수업 자료를 주고 받는 ‘인디스쿨’을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매일 만나는 동학년 교사들이 살아 있는 인디스쿨이었다.
올해 우리 학년은 매주 정기 모임 2회씩 수업 이야기를 하는데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억지로 회의를 마무리한다. 그 시간 동안 수업 계획을 거의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회의가 끝나면 내가 맡은 부분을 조금 더 준비하고 다음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 정도만 챙기면 된다. 무슨 수업을 할지는 여러 선생님과 함께 하니 아이디어가 차고 넘친다.
혁신학교에 와서 달라진 것
12명이나 되는 동학년 회의가 나처럼 편하기만 한 사람은 몇 안 될 수도 있다. 내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아이디어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그 시간이 힘든 선생님도 있을 거라 생각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고민스럽기도 하다. 수업 준비에 학급 관리 고민까지 하다보면 중요한 고민임에도 자꾸 뒤로 미루게 된다. 문득, 이렇게 계속 미루다 보면 언젠가 나도 다시 ‘혼자 힘들어하는’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힘들었던 그때를 떠올리며 지금과 무엇이 달랐었는지 생각해 본다.
이전에,
학교는 해야 할 일로 가득한 곳이었다.
나를 도와주겠다는 사람보다는 네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다는 시선이 더 많았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이 내 맘처럼 되지 않을 때 난 흔들렸고 힘들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교실 안에 머물러야 했던 적이 많았다.
배우고 싶은 것들은 학교 안에서 채우지 못하고 밖에서 찾아야 했다.
지금은
거꾸로 지금 내가 있는 이 학교는,
옆 교실에 가면 언제든 나를 가르쳐 줄 동료들이 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교실 밖, 학교 밖으로 언제든 나갈 수 있다.
아이들과 학부모로 인해 흔들릴 때 하소연 할 동료들이 있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다.
나에게 뭘 하고 싶은지 묻는 동료들이 있고, 난 도와 줄 이들이 곳곳에 있다.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5년 동안 내 옆에는 “우리 이거 해봐요. 이런 건 어때요?” 하고 나를 불러 주는 동료가 있었다. 주춤주춤 머뭇거리는 나를 움직이게 했던 동료들의 말, 사실 나는 먼저 그런 말을 잘 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불편해할까 봐, 혹은 힘든 부탁을 하는 것일까 봐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교육적인 것’을 향해 가는 누군가가 입장을 명확히 하고 ‘나는 이걸 할거에요.’라고 말할 때 나는 머뭇거림을 멈추고 행동할 수 있었다.
나는 교사로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
글쓰기 마지막 주제를 다시 곱씹어 본다.
우리는 교사로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요?
교사가 가야 할 길?
교육하는 것, 교육적인 것, 교육이 가능하게 하는 것.
내가 그동안 교사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나와 함께해 준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내가 누군가에게 그 원동력이어야겠다.
서로에게 원동력이 될 만한 말 한 마디를 먼저 꺼내야겠다.
“선생님, 뭐 하고 싶으세요? 같이 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