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 문서 말고, 진짜 교육과정

2024 혁신아카데미 세 번째 글 / 우리 학교는 어떤 길을 만들어 갈까

by 꿈틀

00초 학교상, 나의 교육 목표


우리 학교에는 교훈이 없다. 인근 유치원생들이 입학을 앞두고 질문하는 교화, 교목도 없다.

교훈 대신 개교 교원들이 모여서 협의한 것은 우리가 함께 추구할 학교상이었는데 오랜 논의 끝에 정리한 문구는 “더불어 성장하는 행복한 민주시민 배움터”이다. ‘함께 꿈꾸는 즐거운 어린이, 배우고 나누는 행복한 선생님, 공동체 안에서 하나 되는 학부모’라는 학생, 교사, 학부모 상도 그려 보았다. 교사로서 내가 생각해 온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선생님과 생각을 나누고 결론으로 만들어낸 저 문구들은 교육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자주자주 떠올리게 되는 소중한 ‘나의 학교상’이다.


교육과정 문서에 갇혀 버린 학교 교육 목표


교사로서 근무해 온 5개 학교 중 그 학교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릴 수 있는 학교는 지금 이 학교가 유일하다. 그런데 올해 다모임에서 여러 선생님의 의견을 들으며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학교상과 교육 목표들이 이제 많은 선생님에게는 ‘교육과정 문서에나 있는 것’이 되었구나 하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 그 학교에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지만 나의 교육활동과는 별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했던 교육과정 문서. 그 속에 들어있는 교육청 교육목표나 학교장 경영관, 그런 것들.


우리 학교가 어떤 교육을 추구해야할지 협의하며 개교한 지 5년이 지났다. 그 사이 학교는 60학급 1000명이 훌쩍 넘는 학생들이 다니는 거대학교가 되었다. 교감선생님 두 분과 교사들 대부분은 개교 이후 전입 오신 분들이고 이제 교장선생님도 새로 오시는 상황을 맞게 된다.


올해 다모임에서는 학기 초 학교 설명회, 학부모 총회, 공개수업, 체험학습, 통지표, 교육과정 평가회 등을 다루었다. 교장선생님 퇴임을 앞두고 교장공모제도 주요 이슈였다. 코로나 이후 정착된 ZOOM 회의 방식으로 다모임을 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라 다모임에서 발언하는 선생님들의 수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선생님들도 회의에 많이 적응하셨는지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 가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대체로 이전해 했던 방식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하는데 이러저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바꾸자는 의견이 오고갈 때 나는 ‘우리 학교 교육계획서’에 들어 있는 교육 목표, 과제, 어린이상, 교사상 등을 떠올린다. 앞서 이야기한 생각들을 하면서 발언을 시작한다.

“우리 학교에서 이걸 하게 된 배경은요, 예전에......”

이런 말을 해야 할 상황이 올 때마다 교육과정에 기록된 ‘00초 혁신교육 3대 과제’ 같은 것들은 아무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소중한 동료들과 함께 고민한 것들이 이전에 내가 다른 학교 교육과정 책자에 들어있는 ‘학교장 경영관’을 대하던 것 정도로 치부될 거라는 생각을 하니 속이 상하기까지 한다.

어떻게 하면 교육과정 속에 있는 ‘00초가 추구하는 것’을 ‘교사인 내가 추구할 것’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함께 꿈꾸는 교육이 우리 교실에서 꿈틀거리기를


마침 2022개정 교육과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새 교육과정이 다루는 교육내용은 어떠한 것인지 작년 1,2학년을 시작으로 교사 대상 연수도 폭넓게 실시되고 있다. 사실 국가교육과정조차도 교과서에 가려져서 교사들이 눈여겨보지 않은 지 오래이긴 하다. 나도 임용고사를 치르고 거의 10년 동안은 국가교육과정에 관심도 없었다. ‘교육과정 재구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제서야 나의 자유로운 교육활동을 위한 방패막이로 국가교육과정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개정 교육과정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세계적인 흐름인지, 지나온 혁신 교육의 성과인지 몰라도 개정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면면이 혁신학교의 무엇을 닮았다. 특히 ‘학교자율시간’은 ‘학교가 추구하는 그 무엇’을 실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시도이다. 7차 교육과정 적용기에 학교재량시간이라는 이름으로 주1회 컴퓨터 교육이나 한자 수업을 했던 정도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면 학교 단위로 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활동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깊이 있는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상황이다. 우리 학교는 어떤 교육을 추구할 것인가, 무엇을 교육할 것인가 함께 고민하고 협의하면서 ‘학교자율시간’에 적절한 우리 학교만의 교육과정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 기회에 선생님들과 함께 00초 학교상을 다시 살펴보고 ‘더불어 성장하는 민주시민 행복 배움터’의 의미를 되살려 보겠다는 마음은 욕심일까? 마음이 아픈 아이들, 학부모들로 인해 흔들리는 교실, 흔들리는 교사, 흔들리는 학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추진되는 정책 앞에서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올해 교육과정 평가회는 ‘학교자율시간’을 위한 준비 시간이 될 것이다. 80명이나 되는 많은 선생님들과 우리 학교가 추구할 것,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을 고민할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 들뜨기도 한다. 아마 나처럼 기대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거라서, 누군가에게는 쉽고 빠르게 끝내고 싶은 업무일 수 있어서 추진해 갈 과정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 한 가지는 그 동안 교육과정 문서 속에 갇혀 있었던 말들이 잠시 밖으로 나올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함께 꿈꾸는 즐거운 어린이’

‘배우고 나누는 행복한 선생님’

‘공동체 안에서 하나 되는 학부모’

라는 우리 학교의 학생, 교사, 학부모 상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교육과제들이 교사들의 마음에 닿아서 각 교실에서 펼쳐질 기회가 다시 온다. 어쩌면 예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색깔이 입혀질 수도 있다는 각오는 해야겠다.

새로운 구성원들과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간다는 것에서 다시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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