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에서의 다모임, 여럿이 함께 한 걸음씩

2024 혁신아카데미 두 번째 글 / 우리 학교는 어떤 길을 걸어왔나요?

by 꿈틀

다모임 : 다같이 모여서 의논함. 혁신학교에서 교원 전체 회의를 말함.

'다모임은 우리 학교에서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다. (다모임 규정)'

개교 5년 차를 마무리하는 교육과정 평가회에서 다모임 규정에 삽입된 한 줄을 발견했다. 2024학년도 3월에 학교에 돌아온 후였다. 1년간의 공백기에 학교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이런 구절을 넣게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여러 선생님에게 ‘피곤하다고 여겨지는’ 다모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절이 들어간 것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근무했던 4년 동안 다모임은 내내 뜨거운 감자였다. 개설 요원 교사 상당수는 혁신학교에서 다모임은 당연한 것이고 학교의 모든 문제를 다모임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동의했다. 앞선 혁신학교의 경험을 반영해 우리는 시간을 제한하고 중요한 몇 가지 사항들로 규정을 만들었다. 개교 과정에서 책상과 칠판을 고르는 문제부터 여분의 프린터를 어디에 둘 건인지, 업무를 어떻게 나누어 할 것인지, 새 학년 담임 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까지 ‘다모임’이라는 이름으로 교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의논했다.


이전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한 다모임에서 내 의견을 내고 우리가 정한 대로 교육활동을 하는 것이 새롭고 좋다고 말하는 교사들이 있는가 하면 사소한 안건에 대해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거나 서로 다른 경험을 해 온 교사들과 어긋나는 듯한 분위기가 너무 힘들다는 교사들도 있었다. 다모임에 대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는 마음에 늘 숙제처럼 남아 있다.


민주적인 학교 운영, 교육과정 운영을 중심으로 하는 학교, 공동체가 살아 있는 학교.


내 머릿속 혁신학교를 구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다모임이다. 나도 다모임이 항상 좋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하다고 여기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참여한다. ‘혁신학교’ 운영에 뜻을 모은 개설 요원들과 수많은 다모임 과정에서 서로가 생각하는 ‘혁신학교’가 그렇게 다양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와 다름을 확인하고 맞추어 가는 과정이 때로는 아프고 힘들기도 했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듣고 중요한 결정을 함께 내리고 나면 ‘이렇게 또 한 걸음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입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15학급, 교원 20명에서 시작한 학교는 60학급 거대 학교가 되었는데, 코로나 이후 시작한 ZOOM 회의 방식은 회의에 대한 피로감을 더 증가시켰다. 개교 초반에는 사물함 크기며 TV 위치까지 정해야 할 정도로 안건도 많았지만 몇 년 지나니 새로운 안건은 점차 줄어들었다. 4년 차 연말 교육과정 평가회에서 주요 안건을 다루는 회의는 부장회의를 중심으로 하고 필요한 때에 다모임을 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학교에서 나에게 도전이었던 것이 그 다음 누군가에게는 원래 있던 것으로


1년이라는 공백기를 두고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나는 순간순간 작은 변화를 깨닫는다. 나름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이전과 달리 ‘새롭게’ 만든 여러 가지가 전입해 온 많은 교사들에게 ‘이 학교에 원래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여기는 수업 시종을 알리는 종이 없대.’

‘80분 수업을 하고, 30분 중간 놀이를 한대.’

예전에 내가 학교를 옮기면 그랬듯이 ‘이 학교는 이렇대. 이런 건 좋네, 어떤 건 불편하네.’ 하면서 여러 선생님은 새 학교에 적응하고 계셨다. 그렇게 하게 된 배경이나 의미는 잊혀지고 있었다.

‘함께 성장하는 민주시민 행복 배움터’

‘민주’와 ‘행복’이라는 말을 넣기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멋진 이 말이 나에게는 교실에서 구현해 내야 할 소중한 목표였지만 다른 선생님들께는 ‘학교 홈페이지 메인에 걸려 있는 그냥 그런 말’ 뿐일 수도 있다.


그런 것 중 하나가 올해 다모임 안건에 올라왔다.

많은 학교가 사용하는 통지표 양식과 다른 우리 학교 통지표 양식은 NEIS 업무 처리와 관련하여 불편함이 있으니 다른 학교에서와 같이 NEIS 통지표 양식을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머리로는 ‘구성원이 달라졌으니 바꿔야 할 것이 있으면 협의해서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마음이 불편했다. 나에게는, 그리고 이 양식을 함께 만든 여러 교사에게는 많은 고민과 스토리가 담긴 통지표, 아니, ‘봄/여름학기 성장보고서’였기 때문이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흐름을 따라 교육활동을 해보자.

- 분절적인 교과가 아니라 주제를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자.

- 교육활동을 담아내는 통지표 양식이 필요하다.

- 교사가 아이들을 평가하는 동시에 아이들이 스스로의 학교 생활을 돌아보게 하자.


5년 전에 통지표 양식을 함께 고민했던 몇몇 선생님들이 다모임에서 의견을 내주셨다. 흥분을 애써 눌러가며 의견을 내는 교사들 가운데 나도 있었고, 같은 맥락에서 연달아 의견을 내 주시는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이걸로 설득이 될까?

불안한 나를 안심시킨 건 사회를 본 다른 선생님의 한 마디였다.

“벌써 3년째 근무하고 있으면서 저는 우리 학교 통지표가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 몰랐어요. 오늘 다모임에서 몇몇 선생님들이 이야기해 주시니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하’ 하는 순간

다모임은 교사들이 협의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장치일 뿐만 아니라, 서로의 입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과 현재의 우리가 만나도록 하는 것이었다. 누구 하나가 설명하고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공유한 여럿이 그 의미를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고 또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다모임을 하며, 교실에 혼자 앉아 ZOOM 화면에서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지나온 길을 함께 해 온 동료들에게 깊이 고마움을 느낀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고마움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면 더 좋으련만, 그건 좀 쑥스러울 수 있으니 대면으로 다모임하자는 욕심은 잠시 넣어두고, 한 걸음 함께 내딛는 또 한 번의 다모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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