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헤어지면 하는 일 중 하나가 그 사람과 관련된 물건을 정리하고, 사진을 지우고, 그렇게 그 사람의 흔적을 모두 지우는 것이다. 그런데 딱 하나. 도저히 정리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기억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없앤다 해도 내 머릿속에 남은 추억과 기억마저 지우개로 쓱싹-하고 지워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우리를 더 고통스럽고 아프게 하는 것은 그 물건들이 아니라 기억인데 말이다. 결국 우리가 물건들을 버리려는 것도 그것을 통해 더 이상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게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버리고 지워도 완벽한 삭제라는 것은 없나 보다.
헤어짐, 마치 음식이 상하듯
어떤 사람과 끝이 나기 전 그와의 기억은 꽤 좋은 추억이었다. 그 사람과 같이 갔던 여행도 참 재미있었고 함께 나눠 듣던 음악도 너무 좋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사람에 대한 감정이 변질되는 순간 달라진다. 마치 음식이 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말 좋았던 그곳을 그 사람과 같이 갔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가기가 싫고, 들으면서 설레었던 음악도 그 사람이 떠올라서 더 이상 듣기가 싫어진다. 누군가와 헤어지면서 좋은 여행지를 잃어버렸고 수많은 좋은 음악들을 잃어 벼렸다.
그 사람이 미운거지, 그 사람이 들려준 노래가 미운 건 아니니까.
살면서 부단히도 사람에 대한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문득 어떤 노래가 듣고 싶어도 그 누군가와 관련된 노래면 애써 듣지 않았다. 정말 듣고 싶지만 그 노래를 들으면 음악으로서 좋음과 동시에 자꾸 그 사람에 대한 감정과 기억까지 같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노래는 죄가 없는데...'
분명 그땐 이 노래를 들으며 그렇게 좋았었는데. 어쩌다 그 감정이 여기까지 변한 건지. 그렇다. 노래는 죄가 없다. 그 노래와 연결되어 떠오르는 내 감정들이 그 노래까지 변질시킨 것이다. 결국 그 노래를 틀고 말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노래를 들어도 그가 떠오르지 않을 순간이 분명 올 것임도 직감했다.
미움으로 행복까지 덜어내지는 말기
세상에 반드시라는 것이 있을까. 꼭 그렇게 지워지지 않는 시간과 추억들을 반드시 없애보려고 애를 써야 하는 걸까. 그냥 그때 참 좋았지 라며 추억할 수는 없는 걸까.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럼 그때까지 굳이 애써 내가 그것들을 피해 다녀야 하는 걸까. 아픈 감정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면 아픈 감정을 지움으로써 좋았던 감정까지 지워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그 사람과의 추억도 있지만 나만의 추억도 있고 감정도 있다. 그 음악은 그 사람과 같이 들었던 것이지만 오직 나만이 느꼈던 행복도 있었다. 그것까지 다 덜어낸다는 것은 인생에서 너무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다.
지난 시간은 그냥 두자. 자연스럽게. 그때 우린 그때의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한 거야.
내가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인 멜로가 체질을 보다가 귀에 들린 대사다. 저 대사를 되새길 때마다 이렇게 지난 시간을 말끔히 정리해 주는 한 줄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시간에 대한 감정을 잊어버리고 미화시키려고 하는 것보다 그냥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그렇게 시간에 따라 서서히 보내버리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잃버릴뻔했던 음악을 다시 들으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이 노래가 나한테는 이렇게나 좋은데. 평생 잃어버릴뻔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