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가도 화나 있는 사람들
아침부터 부랴부랴 병원에 달려갔다. 철도도 파업상태인데, 집에서 병원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가야 했다. 그래도 아주 급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피부가 뒤집어졌다. 매일같이 여드름이 올라오는데 아주 딱딱하고 큰 여드름들이 계속 올라오고 계속 고름이 난다. 근처 병원에서 약을 받아왔지만 항생제 부작용인지 이명과 어지러움 때문에 도저히 지속적으로 복용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다니던 피부과에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그 피부과를 가지 않기로 생각했다. 나는 여드름 약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약을 끊으면 재발을 하는데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고 있는 와중에 내 말을 끊으며 "아니 그게 아니지. 약을 계속 먹을 순 없고 원인을 찾아야지!" 라며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머리카락 때문이다. 헤어제품을 계속 바꿔가면서 원인을 찾아라고 대충 말하고 끝냈다.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의사는 '샴푸 타령'이었다. 진료실에 들어갈 때부터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데 뭐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병원에서도 못 찾는 원인을 환자가 어떻게 찾나. 더군다나 여드름만 20년째다. 점점 더 심해진다. 그동안 안 해본 거 없이 다 해보다가 최후의 방법으로 약을 택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기분 상하려고 아침부터 갈아타고 긴 시간을 돌아 여기까지 왔나 후회가 됐다.
요즘은 어딜 가도 사람들이 화가 나 있다. 데스크 직원들도 의사도 약사도. 뭐가 그리 불만인 것일까. 말 잘못하면 얻어맞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오래 살았던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오만정이 뚝 떨어진다.
타인에 대한 불친절은 나의 불행을 뜻한다
전에는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치솟고 나도 똑같이 해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 사람의 인생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조금 든다.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일을 하는데 그 일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은 본인에게 가장 불행한 일이다. 나도 짜증 내며 일해봐서 안다. 나와 맞지 않는 일, 내가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할 때의 그 불행함, 느껴봐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일에서만 짜증이 날까? 그냥 개인의 삶의 태도인 것이다. 사람에 대한 불친절은 본인 인생에도 불친절함을 뜻한다.
나도 한때 의사를 꿈꿨다. 아니 정말 간절했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만약 의사가 된다면 최선을 다해 직업의식을 가지고 한 몸을 갈아 넣으리라. 결국 의사가 되지 못했으니 내 다짐을 증명할 길이 없다. 그런데 요즘은 '의사'라는 직업에 실망을 많이 한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 같지만 내 소신으로 '의사'라는 직업은 일 그 이상의 이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이고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내 속에 남아있던 의사라는 꿈의 작은 불씨가 꺼져버릴만큼 실망스럽고 안타깝다.
거울 속의 내 모습
저렇게 화나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나는 저런 삶을 살지 말아야지'라고 깊이 생각한다. 한데 그런 것 치고 지금 나는 저들보다 더 화나는 삶을 살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나도 이 굴레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래도 살아있는 한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뭐라도 해보겠지. 중년이 지나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얼굴에 다 드러난다. 빠르면 30대부터도 드러난다. 그때부터는 이쁘고 잘생긴 게 중요하지 않다. '인상'이 중요하다. 인상은 사람들의 호감을 좌우한다. 면접에서도 '인상'이 중요하다. 왜냐면 그 인상에는 그 사람의 지나온 삶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쟁이가 아니더라도 느낌적으로 한 사람의 인상을 통해 그 사람을 어느 정도 볼 수가 있다. 아마 그런 경험들이 다들 있을 것이다. 대체로 첫인상이 맞아떨어진다는 것. 그러니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가가 궁금할 때 거울속의 나를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