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강해서 놀라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니 해명부터 하고자 한다. 괜한 억지 관심을 끌기 위해서 저렇게 제목을 지은 것은 아니다. 그냥 의자에 앉아 지금의 내 상태를 곱씹어 생각해 보니 저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은 참 좋으면서도 안 좋다. 모든 직장인은 '시한부' 다. 단지 그 마지막이 좀 많이 남았을 뿐. 그 끝이 자발적 퇴사이든 정년퇴직이든 어쨌든 출근할수록 그만둘 날이 가까워 온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더욱더 그렇다. 최근 들어 몸이 안 좋아지면서 나의 '시한부 직장인 인생'은 더욱더 가파르게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버티고 있는 것은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며 과로와 스트레스로 죽나 아니면 나와서 굶어 죽나. 직장을 다니면 생명이 위험하고, 퇴사를 하면 생계가 위험하다. 퇴사를 하면 내 생계는 ' 시한부'가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앞으로 이 '시한부 직장인'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까.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너무 잘 알아서 청산유수로 말하고 싶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세상에 명확한 건 없다지만 내 앞날만큼 흐린 것이 또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답이 명쾌하다는 것도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결국 그것 하나만 남는다.
세상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남의 눈이 중요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중요하고, 세상의 소리가 중요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내가 나를 보는 기준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세상에 눈과 귀가 어두워졌다. 정확히 말하면 세상과 더 이상 얽히기 싫어서 거리감을 두면서부터인 것 같다. 사람과도 억지로 친해지려 노력하지 않았다. 평판이나 그 어떤 것에도 딱히 욕심은 없어졌다. 그러니 오히려 내 모습이 더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만약 나의 어떤 모습을 고치고 싶다면 그건 타인의 눈 때문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내 기준에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신경 쓰는 게 많아지고 피곤해지는 것도 한몫했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어느 순간 세상이 주는 상처에 이제는 조금 무던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낭비하던 관심이 모두 나에게 집중되는 순간 다시 내 삶이 가장 중요해졌다. 요즘 세상에 카스트 제도나 골품제가 같은 신분제가 없다지만 내가 느낀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내게 말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하지만 내가 보고 느낀 세상은 달랐다. '무시'라는 것을 정식으로 당해보면 알게 된다. 공식적인 신분제 대신 비공식적인 불평등과 계급이 존재한다. 그래서 모두가 그 계층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계층의 사다리를 오르고 싶었던 나는 오르지 못했다. 반대로 계층의 미끄럼틀을 타고 쭉 내려왔다. 아니 어쩌면 원래 위치였는지도 모른다. 나도 나를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보고 싶다. 대체 난 어디쯤에 있을까. 언젠가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사는 게 미끄럼틀을 거꾸로 오르는 것 같다고. 이런 말 하면 분명 혼날 테지만 평생이 삼재다라는 말을 달고 산다. 혹은 내 인생은 수능 킬러문항보다 더 풀기 힘든 고난도 문제 같다는 말도 종종 한다. 온갖 비유적 표현을 갖다 붙여 인생의 힘듦과 애환을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위로가 되는 것 반 , 물음표 반이었다. 내 삶에 대한 동정표를 던지다가도 , 그런데 과연 바람직하게는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다 저마다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방식'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다'라는 것이다. 그렇다. 모두들 그저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끝을 알고도 가는 것들이 많다. 인간은 다 죽는 줄 알면서도 , 언제까지 살지 모르면서도 무언가를 얻고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산다. '시한부 직장인'인 줄 알면서도 열심히 출근하고, 일하고, 그 후의 삶을 위해 여러 가지 땅굴을 판다. 인생에 대해 명확한 철학은 딱 하나다. 평생을 내가 불행한 일을 하며 불행하게 사는 것은 오답이라는 것. 그것만은 확실하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불행을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산다. 혹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단순하다. 자신의 불행을 탈출하기 위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라. 세상 탓, 팔자 탓 해봐야 변하는 건 없다. 탓할 거면 포기가 정신건강에 더 낫다. 나의 불행이 무엇인지 알고 나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불행은 줄이고 행복을 늘리는 방향으로 살아가면 된다. 적어도 살기 위해 일하는 건지 , 일하기 위해 사는 건지 헷갈리는 삶은 살지 말아야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