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 작가 전시회

by 감성기복이


박신양 작가의 전시회를 또 한 번 다녀왔다. 지난번에는 강연 시간에 맞춰 가서 강연을 듣느라 사실 제대로 관람하지 못했다. 정령들이 돌아다니는 것도 보지 못했다. 오늘 갔을 때는 다행히 정령들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아티스트 토크가 있는 날. 지난번 두 시간 가량의 꽤나 긴 토크였지만 작가의 예술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사실 오늘도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재방문하게 되었다. 아니, 사실 얼리버드 특가로 사놓은 티켓이 두장이나 있어서 이기도 하다. 한 장 더 남았기 때문에 아마 전시회가 막을 내리기 전 한번 더 가지 않을까 싶다.






예술 이야기가 좋다

나는 예술적 재능은 단 1%도 타고나지 않은 사람이다. 소질이 전혀 없다. 음악도 미술도 그 어느 것에도 말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찾는다면 예술을 엄청 좋아한다. 그리고 깊이 있게 생각하고 느낀다. 사실 그림은 전혀 문외한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었다. 박신양 작가가 이번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예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러시아에서는 예술 이야기를 아무 때나 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예술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적다고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반기기보다는 지루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것들을 느낀 적이 많다. 정말 나는 이 노래 한 곡을 듣고도 느끼는 게 많은데, 이걸 누구하고 이야기하나. 물론 얘기해 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예를 들어 "어떻게 곡의 도입부를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스트링과 드럼 비트를 어떻게 이렇게 짰을까?, 이 가사는 어떻게 이렇게 썼지?" 난 이런 이야기를 하루 종일 할 수 있지만 그걸 들어줄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나도 그래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하고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물론 그 배움이 너무나도 짧았지만 기회만 된다면 배움을 이어가고 싶다. 정말 평생 가져가고 싶은 분야가 음악이다. 가사, 피아노, 작곡, 보컬 뮤지컬 장르까지 음악에 대한 모든 게 좋고 관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말이 더 공감 갔다. 그리고 그 예술 이야기를 그렇게나 깊게, 길게 해 줘서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미술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작가의 해석을 듣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를 것 같아서 정말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모든 해석과 도슨트를 들었다. 덕분에 거의 외울 정도로 작품에 대한 설명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나도 도슨트를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을 한번 해본다.



이서준 도슨트

도슨트 이갸기가 나왔으니 자연스레 이 분의 이야기로 흘러들어가 보자. 사실 강연장에 갔을 때 눈에 띄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을 이서준 도슨트라고 소개했다. 어디를 가도 어딘가 모르게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이 분이 그런 사람 같았다. 이분의 도슨트 경력이 얼마나 되는지 업계에서 얼마나 유명한 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을 어떠한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능력과 말솜씨는 이미 대단한 것 같았다. 전달력과 발음도 상당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는데 바로 이분의 표정이다. 프로로서 잘 다듬어진 건지 아니면 정말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타인이 보기에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보여줬다. 미술이 좋고, 그것을 해석해서 전달하는 게 좋아 보였다. 분명 지칠 만도 한데 지치는 기색이 전혀 안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사실 그래서 도슨트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너무 비싸서 선뜻 예약을 할 수가 없더라. 마지막 남은 표 한 장은 도슨트와 함께할 생각이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글, 딸은 좋겠다. 이런 말 해주는 아빠가 있어서



당나귀 같은 것

사람은 내 세상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된다. 지금 나 또한 그렇다. 불행의 끝을 달리고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든다. 몸이 이제 그만 쉬라고 말해주고 있다. 박신양 작가가 연기를 너무 열심히 해서 몸이 망가지고 소진되었을 때 그림을 만났다고 했다. 여전히 좋은 작품이 있다면 연기를 하겠다고 하지만 지금은 연기보다 그림 그리는 작업을 더 즐기는 것 같아 보인다. 웃기지만 나도 뭘 했다고 그 소진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나의 소진은 결이 조금 다르다. 내가 살고 싶지 않은 삶을 억지로 살고 버티다가 이제 그 버틸 힘이 동난 것이다. 원하는 것을 열심히 하다 몸이 망가졌으면 억울하지나 않으련만 솔직히 지금 억울해 죽겠다. 한번 망가진 몸은 되돌릴 수도 없고 평생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이 망가진 몸 때문에 다시 태어나서 리셋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어느 정도로 소진되었냐고 한다면 더 이상 사람과 이야기하는 게 힘들 정도로 소진되었다. 사람한테 관심이 없어졌다. 나한테 말 거는 것도 싫고 내가 말도 걸지 않는다. 타인의 감정을 생각할 기운조차 없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진 것이 확실하다. 더 이상 긴 대화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내 글이 더 길어지나 보다.


박신양 작가는 그림을 그리다 보니 밤을 새우게 되었고 그게 10년이 훌쩍 넘게 되었다고 한다. 연기도 그림도 원하는 삶을 따라 몰두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다 굶어 죽은 사람은 없다고 한 말도 기억에 남는다. 나도 생각해 봤다. 내가 밤을 새워도 좋은 것이 무엇인가. 그럼에도 지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도망치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게 글이고, 말이고, 음악이고, 책이다. 그렇다면 또 생각해 본다. 나도 밤을 새워 책을 읽고 글을 쓰는데 몰두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꽉꽉 채워 넣으면 굶어 죽지는 않지 않을까. 잠깐 생각해 봤다. 그러다가 다시 나는 운이 좋지 못하지라는 것으로 귀결될 때도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다. 실패는 무기력의 어머니다. 요즘은 생각한다. 어쩜 이렇게 모든 게 꽉꽉 막힌 것처럼 안 풀릴까. 그 이유는 내가 지금의 삶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내가 잘못된 길을 걸어왔고, 그 길에 계속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지금 일을 열심히 하기 위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시계만 보고 있다. 언제 시간 가나. 하루가 빨리 갔으면 좋겠다. 그냥 다 어떻게든 시간만 때웠으면 좋겠다. 그럼 돈은 나오니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루 10시간가량을. 그러고 나면 하루의 끝에 드는 생각은 결국 공허함이다.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세상에 대한 화가 많아진다. 놓아야 한다. 놓아야 할 때이다. 하지만 내가 꾸려온 인생이 너무나 불행해서 나에게 확신도 없고 불신만 가득하다. 지금의 선택이 또 틀리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살다가 박신양 작가나 이서준 도슨트 같은 사람들을 보면 다시금 용기가 올라온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오늘은 전시회에 돌아다니는 정령들까지 너무 부러워 보였다. 그분들도 모두 배우라고 한다. 유명해지지는 못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업계에 머물고 있고 역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행복할 것 같았다. 그 모습들이 불행한 내 마음과 너무 대비되었다. 아니 내 불행을 더 극대화시켰다. 물론 지금 내 머릿속에서 어떠한 감정의 오류가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은 내가 찾아 읽고, 말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지 발음 같은 기술적인 부분들도 연구하고, 글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쓸지도 연구하고 찾아다닌다. 좋은 글을 보는 게 인생에서 정말 행복한 순간 중에 하나이다. 이번 작가의 전시회도 사실 그림과 함께 글들이 있어서 더 좋았다. 글들에 더 마음이 갔다. 난 어쩔 수 없이 그림보다 글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더 큰 사람이다. 나는 예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건 애호의 영역보다도 재능과 운의 영역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나는 삶에서 예술을 한편에 꼭 가지고 가야 하는 사람이다. 반드시 한쪽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말라죽을 것 같다.


박신양 작가는 우직하게 자신의 짐을 짊어지고 가는 당나귀가 인상 깊었고 우리의 인생과 닮은 것 같다고 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돈을 잘 벌고 좋은 직장과 좋은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행적을 따라 살고 싶었다. 그런데 이 당나귀 그림을 여러 본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꼴대로 살아야 하는 거 아닐까. 누군가는 가수일 때 빛이 나는 인생이고, 누군가는 화가일 때, 그리고 누군가는 글작가일 때 빛이 나는 인생이다. 사람은 세상에 각자 자신의 역할이 있다고 한다. 태어날 때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살짝 믿어진다.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는 그 말에 살짝 신뢰가 간다. 사람은 각자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삶이 있는 것 아닐까.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몫이 주어져있고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 아닐까. 박신양 작가의 한 인터뷰에서 누군가 그랬다. " 참 연기로도 성공하셨는데, 어찌 보면 결국 화가가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네요"라고 말이다. 아직까지 배우의 이미지가 조금 더 강하지만 어떻게 보면 배우는 정말 화가로서의 삶을 위한 빌드업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의 흐름이 생겼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빌드업 중일까. 분명 지금 있는 이곳이 결말이 아니고 내 꼴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은 있는데 그럼 나는 어떤 꼴을 찾기 위해 가고 있을까. 그 꼴을 끝내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모든 건 내 용기에 달려있을까. 비밀스러운 수수께끼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