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끝

by 감성기복이


요즘은 정말 우울증인가 라고 느낀다. 사실 괴롭힘을 당할 때만 해도 그 사람들을 안보면 그만이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후가 더 처절했다. 나도 모르게 내 신체와 심리는 굉장히 큰 타격을 입은 것 같다. 일하다가 숨이 막히고 말이 안나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전에 한 상사한테 2년을 시달린 후에 자가면역질환 진단을 받았다. 자가 면역 질환은 완치란 없고 평새 약을 먹어야 한단다. 그런거 보면 정신력이라는 것은 잠시 자신을 속여 억지로 힘을 나게 하는 것이지 자신의 몸이 병들어가고 있는 것은 절대 속일 수 없나보다.


날씨가 좋아졌다. 그런데 봄이 가는게 슬프다. 날이 따뜻해지는데 기분은 좋지 않다. 지금 내 마음 상태와 너무 대비되는 것이라서 그런걸까. 차라리 추운 겨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든다. 그냥 집에 꽁꽁 숨어 있고 싶어지게 말이다. 날이 너무 좋으니까 햇빛을 보고 싶어서 퇴근하면 어디 샛길로 새고 싶어지는 마음과 몸이 지치고 힘드니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갈등하게 된다. 가뜩이나 머리도 복잡한데 또 하나의 갈등을 만드는 이 너무 좋은 날씨가 은근히 싫다.




살면서 느끼는 감정 중 제일 무서운 것이 공허함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날들이 의미 없이 느껴지는 것 말이다. 사실 이번에 안좋은 일을 겪으면서 많이 느꼈다. 왜 지금껏 여기서 버텼나. 진즉 도망칠걸. 빨리 나갈걸. 나에게 맞지 않는 곳에 억지로 억지로 버티며 있어서 망가져 왔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마음이 떠난 곳은 몸도 빨리 떠나는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인데, 매일 출근길마다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다. 진짜 속에서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다. 속에 울음이 가득한데 참을 때 느껴지는 그 느낌 말이다. 일하다가도 그냥 길을 걷다가도 집에 와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눈물이 쏟아진다. 지금까지 산 세월이 전부 다 공허하고 의미없게 느껴진다. 몸이 부서지도록 열심히 살았는데, 평생 고치지 못할 병이 걸리도록 열심히 살았는데 그냥 하루하루 버티느라 소진될 뿐이었다. 아무 의미 없는 날들, 물리적 시간만 보내왔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나이만 먹었다고. 지금까지 살아 온 날들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십수년을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이다. 억지로 웃고, 억지로 살고, 억지로 기분 좋은 척하고 모든게 다 억지인 인생이었다.







박신양 작가 전시회를 다니며 책까지 샀다. 책은 <감정의 발견>. 그 책에서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했던 생각들이 적혀있었다. 어릴때부터 감정을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게 감정을 쓰는 일을 할만한 재능이 없었다. 그런데도 어떤 방식으로든 감정을 털어놔야 살 것 같았다. 그 창구가 나한테는 글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글일 것이다. 아, 그리고 또 하나가 음악이었다. 하지만 음악에 써먹을만한 재능은 없었다. 듣는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렇게 한동안 그 생각을 잊고 살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랐다. 감정을 쓰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내용은 생각보다 굉장히 간략해서 빨리 읽었다. 하지만 찬찬히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한자한자 곱씹으면서. 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딸에게 쓰는 편지였다.


온몸에 힘을 한번 잔뜩 줘봐. 무엇이 들리고 무엇이 보이니? 아마 아무것도 안 들리고 안 보일 거다.평생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끔찍할까?


나는 온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산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들리고 안보였나보다. 그리고 끔찍한 인생이었다. 실제로 내 눈에는 독립하는 것, 먹고 사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불행한 하루를 보내면서 매번 잔뜩 긴장한채 일했고 어깨도 못펴고 고개도 못들고 나를 죽이며 살았다. 내 영혼까지 고갈시키면서. 그래도 좋았다. 밥을 먹을 수 있어서. 편의점 과자로 때우지 않고 그래도 밥을 사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학교를 그만둬야 했고, 공부를 포기했지만 돈을 벌어서 나아지는 삶이 더 좋았다. 덜 초라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돈을 벌어 공부는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노동과 저가의 노동, 그리고 저가인력은 일하고 나면 공부할 시간과 힘이 없었다. 의지력이 소모품이라는 것을 어릴때는 몰랐다. 한번만 도와달라고, 학교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울고불고 매달린 적도 있다. 소용 없었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다시 마음을 잡고 할수 있어라는 단어를 되뇌이며 일하고 밥시간에 굶고 책보고 그렇게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결과들은 결국 최종 탈락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되는게 없을까. 십년이 넘는 시간을. 나도 신기해하고 보는 사람도 신기했다. 항상 마지막에라도 기어코 고꾸라졌다. 모든게 다 탈락이었다. 한번도 산을 넘어본 적이 없다. 더이상 좌절할 용기가 없다. 그렇게 도전은 멈추어간다. 더군다나 10년전처럼 온전한 몸이 아니기에 더더욱 체력적으로도 용기가 없다. 그냥 이번생인 이런 인생인가보다 하고 언제 끝나나 기다리며 사는 날들이 많아진다. 그런데 오히려 힘을 주고 사는 것보다 이렇게 힘을 빼고 사는데 더 낫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좋아한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은 되는대로. 어차피 인생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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