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만한 재능

by 감성기복이
낡은 하루에 신선함 한 방울


리틀 포레스트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와서 이 방울 토마토를 먹었는데, 분명 지금까지 먹어오던 토마토인데 맛이 달랐다. 뭐랄까.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흙맛이라고 해야하나. 그냥 신선하다고 해야하나. 분명 표현하고 싶은 것은 있는데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문득 <리틀 포레스트> 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고요한 시골의 풍경. 잠시 바쁜 일상이 멈춰진 풍경. 토마토에서 어떠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리틀 포레스트> 에서 느껴지는 바로 그 감정으로 오늘 방울 토마토의 맛에서 느꼈던 것 같다. 미친거 아니다. 걱정 마시길.


조용한 곳에 있고 싶다. 사람이 많은 곳이 숨이 막힌다. 극도의 예민함으로 무장된 채 살고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환승역이 참 고욕이다. 사람이 너무 많다. 어느정도냐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환승역에서 갈아타는 그 지점이 스트레스가 될 정도이다. 그냥 그 많은 사람들 틈에 잠시라고 있는 것이 스트레스다.

지금 나는 사람이 사람에게 무관심하다. 사람보다 풀 한포기가 좋다. 내가 이런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나한테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 어디인가. 가끔 캠퍼스에 가서 앉아있다. 거기는 사람이 많지만 가서 앉아있으면 속이 뚫리고 편안하고 그냥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가끔 밤에도 달려간다. 너무 숨이 안쉬어지면 가서 앉아 있다가 온다. 물론 양가감정이 드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또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 아이러니하게도 나한테는 병원이다. 요즘은 좀 덜하긴 하지만 난 어렸을 때부터 병원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왜 병원이 좋을까를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어릴때 찾은 이유는 그거였다. 아픈 사람들이 많아서. 나만큼 혹은 나보다도 속상하고 아픈 사람들이 많아서 나랑 동지인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요즘은 그 감정과 생각을 잊고 살아서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튼 그랬다. 병원에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이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그동안 정말 수많은 바다를 바왔다. 하지만 그중 단연코 하나를 뽑으라면 제주 곽지의 바다.


그리고 요즘은 공원이다. 탁 트인 공원. 이왕이면 사람들이 많이 없었으면 좋겠다. 최근까지 여의도 한강공원을 꽤 많이 갔는데 아무래도 집에서 멀기도 하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요즘에는 잘 안가게 된다. 물론 집 앞 공원도 좋지만 탁 트인 한강을 보고 싶을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주로 먼 서울을 찾게 된다. 망원 한강 공원도 갔었고, 여의도 한강 공원, 반포 한강 공원. 노들섬. 이제 이촌 한강 공원도 가볼거다. 날이 따뜻해졌으니 한강공원 가서 돗자리 펴고 글이나 써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 누가보면 "너가 예술가냐?" 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절대 아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럼 뭐냐?" 라고 묻는다면 내 답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다. 그냥 생각이 많아서 글을 쓸 뿐이다. 그리고 공허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과거의 나를 남겨놓는 것이다. 미래의 나에게 과거에 내가 했던 선택들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그래도 하루하루 헛되게 살지는 않았다고, 이런 생각들을 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남겨두기 위해, 그리하여 또 '난 헛 살았어, 난 뭘 하면 살았을까.' 와 같이 내 과거의 시간이 텅 빈 것 같은 그런 감정을 더는 느끼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매일 이렇게 장문의 글로 나라는 사람의 찰나를 남겨놓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예술가

원래 뭔가에 꽂히면 그걸 깊게 판다. 요즘은 아시다시피 박신양 작가 전시회를 다녀오고 그의 예술의 세계에 꽂혔다. 흥미롭다. 저 사람은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그림의 의미는 무엇인지, 왜 그림을 그리는지, 저 사람의 언어는 무엇인지. 음악을 팔 때도 그랬다. 가수 한명한명, 곡 하나하나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 무언가가 있다. 기술만 탐닉해서는 절대 닿을 수 없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의 곡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그 가수의 전곡을 파고, 세계관을 파는 그런일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세계관이 모여 나의 세계관이 된다. 내 시간들의 공허함, 원치 않는 인생을 살며 그래도 버티게 해준 것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그게 나에게는 바로 이러한 예술이다. 그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며 감정의 공허한 부분을 채웠다. 옛날에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있는데 , 아마 음악이 없었다면 난 벌써 죽고 없었을 것이다 라는 말이다. 손이 오그라드는 말로 들릴 수 있어도 진심이다. 힘든 순간 정말 많이 의지 했다. 정확히 말하면 비트와 리듬이 아닌 음악 속 이야기에 위로를 많이 받았다고 해야겠다. 요즘에는 그 음악에서 멀어져서 감정의 빈 공간을 채워줄 무언가가 없어서 그런가 모르겠는데 아주 많이 공허하다. 박신양 작가가 그리움이라는 감정 때문에 그림을 그렸고 그에게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원형적인 감정이었다면 나에게는 공허함이라는 감정이 그것이다. 공허하다. 굉장히 공허하다.


이상함을 이상하게 봐주지 않는 것이 예술가라는 타이틀이다. 예술이 아닌 곳에서 예술가는 순식간에 이상한 사람으로 전락할 것이다. 하지만 예술의 세계에 있는 한 그는 더할나위 없이 멋진 사람이다.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가? 아니. 그럴 재능이 없다. 태어나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감정도 풍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자유로운 사람. 사람들이 들으면 콧방귀끼는 그 자유 말이다. 표현의 자유. 사람들이 좋아할 글이 아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자유. 그리고 나의 것을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땡큐고 아니어도 할 수 없는 것 말이다. 그냥 내가 표현하고 싶은대로, 쓰고 싶은 대로, 생각나는 대로 마음껏 쓸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쓸만한 재능

브런치는 이제 돈을 벌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나도 브런치로 돈을 벌고 싶다. 솔직한 심경이다. 하지만 그 어떤 글도 유료 발행한 적이 없다. 두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이런 생각이 든다. 내 글을 그냥 내 생각을 담은 글이고 그래서 어찌보면 일기를 나열한 것 같기도 한 이 글이 돈을 받을 만한 글인가? 돈을 받을 만한 글이라면 유익한 정보를 주는 글이거나 아니면 뒷이야기가 궁금한 소설 정도는 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어차피 유료 발행해도 내 글을 돈내고 볼 사람은 없을거야 라는 심경이다.

두번째는 과연 유료 발행이 좋은 걸까? 라는 의문이다. 내 글은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는데, 한명이라도 더 봤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돈이라는 진입 장벽을 걸어놓으면 덜 읽히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에 주저하게 된다. 그리고 이 생각을 얼마전에 공감 받았다. 박신양 작가가 전시회를 하는 이유는, 표현은 누군가에게 가 닿아야 한다는 주관 때문이라고 한다. 그림을 팔지 않는 이유는, 누군가 한명이 그림을 소장하게 되면 다른 사람은 못보기 때문에. 일단은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졌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나의 글도 같은 마음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머지 않아 난관에 부딪힌다. 그렇다면 나는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없는 것인가. 내가 화가처럼 전시회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미 공개가 되어 있는 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팔 수도 없는 거고 무엇보다 책으로 만들 수도 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이곳에 일기 쓰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건가. 그저 '남긴다' 라는 순수한 기록의 의미로만 내 글들을 가져가야 하는 걸까. 내 글에서 생산성을 뽑아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난관이다. 그래도 이제 하나 확고해진게 있다면 나는 글과 말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누가 인정해주든 아니든, 나의 정체성 중 한부분이다. 왜냐면 그게 내가 가진 능력 중 그나마 쓸만하기 때문이다. 돈이 되지 않아도 내 기준치에서는 그나마 쓸만한 재능이다. 나를 쓸만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무엇' 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