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을 쓰고 얼마 뒤, 7월 10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국가대표 음식관광 콘텐트 33선'을 선정했다. 음식 15개, 식재료, 15개, 전통주 3개중, 지역 대표 음식 15개 중에 안동찜닭이 선정되었다. (안동소주도 전통주 분야에 선정되었다.)
카톡 소리에 핸드폰을 열어 보니 고향에 있는 ‘안동 찜닭’ 가게에서 홍보 겸 인사말이 온 것이었다.
많은 이가 그렇듯 나 또한 고향을 지독히 사랑하지만, 정작 고향을 깊이 알지 못하고 속속들이 가 보지를 못했다. 외지 사람도 웬만하면 가보았다는 풍광이 아름답다는 병산서원도 아직 가보지 못했으니, 그것을 물어 올 때마다 서울 사람도 경복궁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많더라는 변명으로 은근슬쩍 넘어가곤 한다. 그러다 보니 TV를 통해 내 고향에 저런 곳이 있었나, 하며 마치 내 것을 역수입하듯이 알게 된 것도 수두룩하다. 오백 년을 살았다는 와룡면의 뚝향나무, 인기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으로 유명해진 만휴정 등….
음식도 매한가지다. 어린 시절에는 바깥 음식을 사 먹거나 여기저기를 유람하는 사치를 누릴 형편이 아니었고, 커서는 객지를 떠돌다가 가끔 부모님 곁에 머물다 오는 것이 일상이었으니 그리된 모양이다. 특히 ‘안동 찜닭’이라는 음식은 오십 살이 가까워진 어느 날 서울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고향에서는 그리 귀하게 여기지 않던 음식이었고, 먹어보지 못했는데 어느 날 안동 찜닭이라는 간판이 서울 시내에 자주 보여서 의아했다. 갑자기 이름이 알려진 그때가 2008년 금융위기 시절로, 생계를 잃은 사람들이 안동에 가서 만드는 법을 배워 호구지책으로 창업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안동 찜닭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이후에도, 그것을 처음 먹어 본 것은 또 십 년이 흘러 코로나로 세상의 창구가 닫혔던 때였다. 아내도 이웃의 말을 듣고 택배로 처음 주문한 것이었다.
당시 코로나로 대구시가 마치 지옥같이 여겨지고, 세상과 유리된 도시이던 시절, 그래도 회사 일은 해야 했다. 그 어려움을 뚫고 직무를 수행한 직원들과 소주라도 한잔 나누어야 했지만 갈 수는 없는 시절이었다. 직원 모두에게는 아니더라도 리더들에게는 뭔가를 보내고 싶었다. 뭘 보낼까 고민했더니 아내가 안동 찜닭을 추천해 주었다. 나는 그때 한번 먹고는 또 바쁜 시간 속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음 날 그 가게에 연락하여 스무 개 정도를 주문했더니 카드 결제는 대면해야 한다며 서울까지 직접 오겠다고 한다. 전화로도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고 했더니 전혀 모르는 눈치다. 몇십만 원의 매출을 위해 그 먼 길을 오겠다는 말에 자영업자의 힘듦과 고향 사람의 순박함이 전해져 왔다. 알아보라고 하니 다음날 연락이 왔다. 그렇게 첫 주문을 했다.
그 가게와의 인연은 이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던 코로나의 시기, 회식을 못 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궁여지책으로 ‘랜선 회식’이라는 기발한 발상을 했다. 퇴근 후 각자 집에서 화상회의를 연결하여 배달한 음식과 술을 마시며 마치 모여서 하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는 원격회식이었다. 처음엔 이런 식으로 터놓은 이야기가 나올까, 하는 생각과 쑥스럽기도 했으나, 어떤 직원은 가족을 옆에 앉혀놓고 참여하기도 했고 생각보다 대화도 잘되었다. 퇴근 후 식당에 모여서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분위기에 과음하지 않는 좋은 점도 있었다. 그때도 몇 번 안동 찜닭을 주문해서 보낸 적이 있었다.
이렇게 회식이나 선물로 그 가게에 근 백여 개는 주문한 듯하다. 또 그것을 맛본 직원이 개인적으로도 주문하기도 했다. 가게 사장은 고맙다며 명절 때 서비스를 보내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일 년 전에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하남에 있는 스타필드에 입점하게 되었다는 대단한 소식을 전해왔다. 시골 도시의 조그만 닭집이 수도권의 대형 복합몰에 입점하다니, 그 대단한 일에 조금의 도움이 되었다니 인사치레라도 마음이 뿌듯했다.
은퇴 후 친구 모임으로 고향에 갔다가, 헤어질 때 아직 노모가 계신 두 녀석의 어머니께 뭔가를 드리고 싶어 처음으로 그 가게에 가보았다. 깨끗한 식당에 젊은 부부가 분주했고 손님이 많은 것을 보니 흐뭇했다. 아무 말 없이 두 개를 받아 친구의 손에 들려 보냈다.
안동 찜닭은 보통의 서민에게 딱 맞는 먹거리다. 맛도 있지만, 가성비도 좋다. 이 음식이 만들어진 까닭은 미식에 대한 욕구보다는 결핍이 만든 결과이다. 단백질이 부족한 시절, 닭 한 마리로 많은 식구가 먹기 위한 궁리로 만든 음식이다. 약간은 맵고 짜고 달짝지근하며 큼직하게 썰어 듬뿍 넣은 포슬포슬한 감자, 윤기가 좌르륵 흐르는 당면이 푸짐하게 들어 있다. 많은 식구가 먹도록 부재료로 양을 늘린 것이다. 우리 세 식구 기준으로는 한 마리로 두 끼를 먹을 수 있다. 아니 세끼다. 마지막에는 남은 양념으로 밥을 볶아 먹으면 또한 훌륭한 한 끼가 된다. 응축된 양념과 적당한 기름기가 뒤섞인 이 볶음밥이 마지막 화룡점정이다.
그 가게에서 인사말이 온 것을 보니 주인도 잊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은퇴한 지금은 예전처럼 많이 주문할 수 없는 처지가 아쉽지만, 고향의 먹거리를 변치 않고 지켜주기를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