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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Oct 25. 2022

'절대'라는 말은 ’절대로‘ 쓰지 말자

사람이 쓰는 말 중 사용에 유의해야 할 단어는 어떤 것일까? 욕설인가? 욕설은 타인에게 분노나 아픔을 주기에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의 첫 번째이겠으나, 그러나 때로 본인의 감정의 순화, 해소와 상황에 잘 버무려지면 풍자와 익살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는 순기능도 있다. 또 비아냥거리는 말, 냉소의 말도 사용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다. 이 말들은 순기능은 없고, 본인과 상대의 마음을 갉아먹는 말들이다. 욕설, 비아냥, 냉소의 말, 이런 것들은 사람의 마음에 가시와 같이 꽂히는 부정적인 말이다.

     

이런 직접적인 부정적 말은 아니지만, ’절대‘라는 말은 어떨까. 확신과 종결을 위해 자주 사용하는 절대라는 단어는 그런 확정성으로 인해 더 이상의 여지가 느껴지지 않는 끊어짐의 말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하게 한다. 대화와 소통을 끊어지게 하는 말이다. 격한 토론이나 협상 중에 ’절대‘라며 상대를 향해 손바닥을 내미는 순간, 대화는 끊어지고 상대는 허탈감과 분노를 느낄 것이다. 또 절대라는 단어는 자신을 옭아매는 말이다. 혹여 일이 틀어지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포박하며 이를 뒤집어 수습하기가 난망하다. 다만, 스스로 각오를 다질 때는 유효한 말이긴 하다. 절대 담배를 다시 피우지 않겠다고 할 때의 절대 같은 것 말이다.

     

’절대‘라는 말은 특히 과학자, 의사, 공학자, 전문가들에게 자주 애용되는 경향이 있다. 논리와 이론, 증명 외에는 어느 것도 믿지 않는 과학자, 인체의 내부와 생체의 생리를 꿰뚫고 있는 의사, 입력치에 대한 그 기대치가 틀리면 Fault(오류)가 되는 공학의 영역 등에서는 당연하다 하겠다.

     

오래전에 금연을 한 적이 있었다. ’했었다‘가 아닌, ’한 적이 있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몇 번의 성공과 실패를 아직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새해, 굳은 마음으로 시작을 했는데 며칠이 지나자 탈모가 좀 있더니, 한 달여 만에 머리카락이 대부분 빠질 정도의 심한 탈모가 왔다. 그나마 모공이 강하다는 흰머리는 남고 검은 머리만 빠지니, 허연 머리가 더 듬성듬성해 보였다. 휴직을 하나, 가발을 써야 하나를 고민할 정도 끝에, 탈모의 권위자라는 어느 대학 교수가 인터넷 상담을 해 준다기에 신청을 했다. 그런데, 교수는 “금연으로 탈모가 생긴다는 것은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다. 절대로 금연이 원인이 아니다”라고 딱 자른 답변을 해왔다. 에라 모르겠다는 편한 마음으로 약간의 치료와 대략 반년의 시간이 지나니 다행히 회복은 되었다. 의사는 스트레스라고 했지만, 금연 후 수시로 졸도를 경험하는 등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은 금단 현상을 경험한 사람이 주변에 많은 것을 보면 지금도 금연 후유증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뛰어난 엔지니어도 절대의 위험에 빠지기 쉽다. 특히 고객에게 서비스되는 현장에서의 품질 문제는 매우 다양하고, 이론과 결을 달리하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현장에서는 여러 번의 테스트와 확인을 거쳐 스텝부서에 문제를 제기하면, 뛰어난 엔지니어일수록 ’절대 그럴 리 없다‘라고 딱 잘라 버린다. 그러나 나중에 결론이 나는 것을 보면 현장의 말이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현장은 직접 체증하고 확인에 확인을 거친 것이니 맞을 수밖에 없다. 이를 ’엔지니어의 패러독스(역설)‘라고 명칭 하면 어떨까. 이렇게 의과학, 공학 등에서는 종종 자기 확신을 ’절대’로 표현한다.

      

그러나 우주물리학자들은 ‘궁극의 지점’에 다다르면 좀 다른 듯하다. 물질을 이루는 최소의 단위는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미립자의 세계, 우주의 기원과 그 끝 무한의 세계를 탐구하다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영역까지 다가간 학자는 ’절대‘가 아닌 ’절대자‘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양자역학을 탐구하는 학자조차 양자역학을 이해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주의 무한에는 신의 영역이 있다고 여지를 남기는 학자도 있다. 그래서 궁극에는 과학이 철학과 종교의 영역을 아우르기까지 한다. 

      

절대라는 말은 사용에 조심해야 할 말이다. 양보나 후퇴가 없는 말이다. 기름종이가 조금의 스며드는 것도 허용치 않고 물방울을 튕겨 내듯이 뚝 끊어버리는 말이다. 시간의 흐름에는 늘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고, 이 방대한 우주에서 절대라고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되는가. 있기는 한가. 절대라는 말은 나에게만 쓰자. 각오를 다질 때나 쓰자. 한지(韓紙)가 먹물을 살포시 품어 주듯이 조금은 여지가 있는 말을 써보자.  

좀 흐릿한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 절대 그럴 리 없다,’ 라기보다 ‘ 그렇지는 않겠지만,‘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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