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야 할 조직의 소통 회피
공무원 친구들을 만나면, 자조적으로 ‘우리는 영혼이 없다’라고들 말한다. 그럴 때 그 친구의 얼굴에는 왠지 쓸쓸함이 언뜻 지나간다.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공무원 조직뿐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과 여러 조직도 매양 한 가지일 것 같다. 군대에서 늘 회자하는 ‘까라면 까’라는 말은 모든 조직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조직은 늘 누구나 거리낌 없이 의견을 내고 서로 활기차게 토론해야 한다. 마치 시장에서 상인과 손님들이 북적이며 흥정하듯이 조직은 흥정 대신 자기 의견을 활발하게 말해야 한다. 특히 상사를 향한 정확한 의견을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리더일수록 자칫 외골수나 잘못된 길로 빠지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때 큰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사안이 사안인 만큼, 팀장이 주재하는 팀 회의에 가끔 참석해보기도 했다. 팀장이 미덥지 못해서가 아니라 직접 팀원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고 빠른 결정과 속도전이 필요한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강한 어투로 자주 의견을 말하는 팀원이 있었다. 내가 참석할 때마다 그러기에 처음에는 내게 반감이 있나 생각했으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니 자기의 임무와 타사와의 경쟁에서 열정이 누구보다 강한 팀원이었다. 나는 그 팀원의 ‘돌직구’라고 불렀다. 어느 날 퇴근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에 내렸을 때 지친 표정으로 현장에서 복귀하는 그 팀원과 마주쳤다. 언뜻 보니 가방에 김밥 한 줄이 보였다. 퇴근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제 오늘 일을 정리하고 마무리해야 한다고 한다. 자기주장만 강한 것이 아니라 늦은 시간까지 김밥 한 줄을 먹으면서 자기 업무를 확실히 챙겼던 열정이 있는 팀원임을 내게 각인시킨 일이었다. 다음 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팀장으로 발탁했는데 그 결정이 옳았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토론을 통해 조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런 돌직구를 날리는 구성원들이 많아야 한다. 돌직구를 날리더라도 무조건 안 된다는 부정적인 말만을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자기 일에 열정이 있고 정통하고 자신감이 있어야 하고 그런 기본 위에서 안 되는 이유뿐 아니라 대안을 같이 말해야 한다. 정말로 불가한 일이라도 가능한 어느 정도까지, 또는 다른 방법으로 次善의 案까지를 말해야 진정성이 있는 것이다. 무턱대고 안된다며 안 되는 이유만 대는 것은 부정적인 사람으로만 찍힐 뿐이다.
또 중요한 것은 그런 직언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사의 마음이 중요하다. 왕조시대에 간관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사리에 맞지 않으면 ‘아니 되옵니다’를 한결같이 외치는 사람 말이다. 그런 듣기 싫은 직언을 더 중히 여긴 임금은 한결같이 성군으로 남아있다. 왕조시대의 고리타분함과 그 관념의 부정적 측면을 많이 깎아내리지만 적어도, 임금이 바른길로 가도록 간언했던 간관들과 역사를 바르게 기록하는 사관의 정신은 누대로 이어받아야 할 자산이다.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라는 말이 있다. 조직이 모두가 찬성하는 명확한 사안이라도 의도적으로라도 반대의견을 내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그만큼 조직이 한 사람의 생각과 결정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라도 반대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부러라도 반대의견을 개진하여 조직이 올바른 방향과 의사결정이 되었는지를 자기 점검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조직은 그렇게 작동하는지는 의문이다.
회의는 토론을 통해 뜻을 모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조직은 의견을 말하기보다 상사의 의중을 헤아리고, 속마음을 살피는 데 더 급급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속으로는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겉으로는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니 공무원들이 오죽하면 영혼이 없다고까지 하겠는가.
단위의 팀도 마찬가지이다. 팀을 방문해서 팀 분위기를 보면 대충 이 팀은 어떻겠다고 하는 느낌이 온다. 팀 분위기가 시끄럽고 동료 간에 대화가 많은 팀이 확실히 성과도 좋다.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만 바라보고 열심히 일하는 팀은 소통이 부족한 팀이었고 당연히 성과도 떨어진다. 이건 경험상 100%이다. 동료 간에도 대화가 없는데 하물며 상하 간에도 대화와 적나라한 의견교환과 소통이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조직은 시끄러워야 한다. 회의할 때도 자기 생각을 모두가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개인별 조용히 연구만 하는 조직이 아닌 다음에야 동료 간에도 시끄러울 정도로 의견 소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돌직구를 날릴 수 있는 팀원도 필요하고 그것을 받을 수 있는 베테랑 포수 같은 리더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