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금지곡 라벨 <볼레로>
매년 11월이 되면 찾아오는 것이 있다. 바로 수능이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금기시하는 몇 가지 사항이 있다. 그중 수능 금지곡이라 부르는 곡들을 듣지 않는 것이다. 샤이니 ‘링딩동’, 동요 ‘상어 가족’, 프로듀스 101 ‘픽 미’, 김연자 ‘아모르파티’가 가장 대표적인 수능 금지곡들이다. 이 곡들의 공통점은 리듬이나 멜로디가 반복되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도는 중독성 있다. 클래식 음악에도 강력한 수능 금지곡이 있다. 라벨의 ‘볼레로’이다. 음악가와 제목은 생소하겠지만, 음악을 듣는 순간 아하는 탄성이 흘러나올 것이다.
프랑스 음악가 모리스 라벨이 작곡한 ‘볼레로’는 반복적인 리듬과 단순한 멜로디가 특징인 관현악곡이다. 스네어 드럼(작은북)이 하나의 리듬을 총 169번 반복 연주한다. 반복적인 리듬 위로 관악기인 플루트, 클라리넷, 파곳, 오보에, 트럼펫, 색소폰, 호른, 피콜로, 트롬본이 차례로 자신을 소개하듯 2개의 주 멜로디가 15분 넘게 연주된다. 같은 리듬을 반복하지만 저마다의 악기들이 가진 특색 있는 음색으로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관악기 연주가 끝나면 현악기들이 그 뒤를 이‘받는다. ‘pp(피아니시모, 매우 여리게)’로 시작된 음악은 끝을 알리 듯 모든 악기가 합류하며 ‘Crescendo(크레셴도, 점점 세게)’로 폭발하듯 끝난다.
‘볼레로’는 원래 18세기 스페인 민속 춤곡의 한 형식이다. 캐스터네츠를 반주로 남녀 한 쌍이 추는 악센트가 강한 3박자의 춤곡이다. 라벨의 볼레로는 이 민속 춤곡의 형식을 따르지 않았다. 다만 이국적 느낌을 나타내기 위해 명칭만 차용하여 사용하였다. 러시아의 전위 무용가 루빈스타인의 요청으로 라벨은 1928년 발레음악 볼레로를 작곡하였다. 오늘날에는 발레보다 연주회 레퍼토리로 자주 연주되고 있다. 루빈스타인이 의뢰한 춤의 내용은 ‘술집 탁자 위에서 여성 무용수가 홀로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추면, 손님들도 춤에 동화되어 다 함께 춤을 춘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28년 10월 곡이 완성되었다. 한 달 뒤 11월 28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루빈스타인 발레단과 발터 슈 타람의 지휘로 초연하였다.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초연의 성공에 볼레로는 오히려 놀라고 당황스러워했다. 라벨은 볼레로에 대해 “이것이 단순히 실험이었으며 음악이 아닌 관현악적 조작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후에 라벨은 “난 단 하나의 걸작만을 썼다. 그것이 <볼레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곡에는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술회했다. 라벨은 볼레로를 통해 ‘관현악의 마법사’ 다운 자유롭고 대담한 색채적인 화성법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