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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Dec 11. 2023

모로코에서 본 충격적 장면, 돌아보니 한국도 그렇네

은퇴한 부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13화)


▲  사람들로 가득한 한낮의 제마알프나광장.

ⓒ 김연순


밤 10시가 넘었음에도 제마알프나 광장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휘황찬란한 조명들이 켜진 노점들이 열을 맞춰 늘어서 있고 호객하는 사람, 흥정하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배가 몹시 고파 일단 식당을 찾았다. 광장의 점포들은 거의 좌판이었고 식당들도 그랬다. 고기와 해산물 바비큐를 하는 곳들이 많았고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우리도 광장 안으로 들어섰다. 호객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어느 점포 한 곳 앞에 섰다. 그 순간,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는데 내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절로 비명이 나왔다. 그 자리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무서웠다.



줄줄이 걸려있던 양의 머리 



나를 극도의 공포로 몰아간 그 무언가는 바로 양의 머리였다. 양의 머리들이 바비큐 된 채로 음식 진열장에 놓인 채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던 거다. 평소 생선 머리도 잘 못 보는 나로서는 그 장면이 너무도 충격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무방비 상태에서 정면으로 딱 마주했기에 더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다.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었다.



이후엔 남편의 손과 팔을 두 손으로 꼭 부여잡고 눈은 땅바닥만 쳐다보며 다녔다. 웬만하면 그랬는지 남편은 "여기도 있다, 여기도 또 있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온몸에 절로 힘이 들어간 채 남편을 놓칠세라, 딱 붙어 다녔다. 생선 머리도 못 보는 나 같은 쫄보에게 대체 이게 뭔 일인지,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는지,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계속 이러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다니나, 왜 이런 곳에 나를 데려왔나 싶어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조금 더 걷는데 남편이 괜찮은 곳 있다며 들어가자 한다. 중앙의 노점들을 벗어나서 가장자리에 있는 식당이다. 자리에 앉으니 맥이 빠지며 온몸이 축축 처지고 가라앉는 것 같다. 크게 한숨 쉬며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제야 숨이 돌아오고 정신이 든다.



남편은 계속 나를 안심시키며 위로하는데 그래도 걱정이 놓이는 건 아니었다. 주문한 파니니와 주스를 먹는데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음식이 들어가니 조금은 진정이 되는 것 같다.



왜 식당 점포에 양의 머리들을 걸어두는 걸까? 나중에 알고 보니 사막을 끼고 있는 나라의 문화는 고기가 신선한 식재료임을 증명하기 위해 바로 잡은 동물의 머리를 걸어두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고기도 야채도 모두 개별 포장을 하지 않고 보여주면서 판매한단다. 



그 모습이 내게는 충격이고 힘들었지만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일 테니 존중하자고 마음먹었다. 하긴 내가 잘 안 봐서 그렇지 우리나라 재래시장에도 돼지머리가 통째로 즐비해 늘어서 있긴 하다. 남편 말에 의하면 스페인 재래시장에서도 양의 머리부터 몸통까지 통째로 진열해 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내가 무서워할까봐서 못 보게 했단다. 그래, 내가 무서워하는 것이니 주의하며 안 보면 되는 거지 싶었다.



다음날 아침 어제의 그 광장으로 나왔다. 제마알프나 광장은 숙소에서 아주 가까웠고 어디를 가려고 해도 그 광장을 지나야 했다. 아침이 되자 놀랍게도 그 넓은 광장이 텅 비어 있다. 영업을 마감한 점포들이 천막을 두른 채 군데군데 있고 청소 차량이 이리저리 다니며 청소를 하고 있다. 어젯밤 정신을 쏙 빼놓은 그 화려했던 광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분하고 조용했다. 그러고 보니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제 공항에 마중 나온 픽업 기사가 숙소 앞까지 가지 않은 까닭을 말이다.



영화 속에서나 본 장면들이 눈 앞에 



저녁의 광장은 차량이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점포와 사람들이 가득했고 리아드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은 차가 다닐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광장 입구에서 택시가 섰고, 이후엔 리어카로 숙소까지 우리 짐을 날라 주었던 거다.



그것도 모르고 야밤에 낯선 모로코까지 와서 급기야 짐을 도둑맞는 줄 알고 기겁을 했는데, 연유를 알고 보니 이제야 웃음이 나왔다. 사막도시는 햇빛이 뜨거워서 골목을 좁게 만들고 이웃한 집의 그림자로 햇빛을 가린다고 한다. 동시에 좁은 골목이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단다.     



마라케시에 머무는 3일 동안 제마알프나 광장을 수시로 지나다녔다. 제마알프나 광장은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찾는 곳으로 마라케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광장의 주변으로는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광장의 중앙에는 천막을 친 노점들이 가득하다. 광장에는 온갖 먹을거리, 마실거리, 구경거리들이 한가득이다. 과일 가게 상인은 산처럼 높이 쌓인 과일을 즉석에서 갈아 주스로 만든 후, 일단 먹어 보라고 한다.



먹어 보면 맛도 있고 가격도 저렴해서 안 살 수가 없다. 특히나 오렌지 주스가 달콤하고 상큼하다. 낮의 광장에서는 갖가지 볼거리가 있고 밤의 광장에는 음악 공연이 있다.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나서 가 보았다. 피리를 부는 사람 앞에 나란히 코브라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동화책이나 영화 속에서나 본 장면이다.


             

▲  피리 소리와 함께 보이는 코브라뱀

ⓒ 김연순



빨간 옷에 빨간 가운을 걸치고 빨간 원통 모자를 쓴 사람이 긴 나무 목발 위에 서서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모자에도 윗옷에도 녹색 별이 그려져 있다. 빨간 바탕에 녹색 별은 모로코의 국기를 상징한다. 사진을 찍자는데, 함께 사진을 찍으면 돈을 내야 해서 피해 다녔다. 지나고 보니 함께 사진을 찍을 걸 그랬나 싶다. 



천년 도시의 아름다움

             

▲  모로코 국기 문양의 옷을 입은 호객꾼

ⓒ 김연순



마라케시는 모로코 중부 내륙에 있는 천년 된 도시다. 황톳빛의 아름다운 건축물 모스크들이 자주 눈에 띈다. 제마알프나 광장 외곽 한편에 있는 쿠투비아 모스크는 규모도 컸지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높은 첨탑이 아름다웠다. 특히 창문이 눈에 띄게 멋졌다. 이 아름다운 쿠투비아 모스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마라케시에 머무는 동안 저녁 무렵이면 쿠투비아 모스크 근처에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옆을 보니 주민들로 보이는 히잡을 쓴 중년의 여성들도, 남성들도 돌계단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자기들도 먹는다. 저 쪽에서는 남자아이들이 축구를 한다. 모두 여유롭고 평화롭게 보인다. 


             

▲  제마알프나 광장 외곽에 있는 쿠투비아 모스크

ⓒ 김연순



이슬람은 하루에 다섯 번의 기도를 바치는데 이 모스크의 높은 탑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를 아잔이라고 한다. 아잔이 들리면 거리에 있던 남자들은 모두 모스크로 들어가고 광장에는 여성들과 아이들만 남는다. 아잔 소리와 함께 석양의 쿠투비아 모스크 탑이 한층 더 운치 있게 보이며 절로 상념에 잠기게 한다. 아잔 소리가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지 미처 몰랐다. 



평화로운 분위기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의 팝 음악 소리가 나며 그만 볼썽사나운 꼴을 보게 되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두 젊은 남녀가 댄스음악을 크게 튼 채 춤을 추고 있는 거다. 여성은 춤을 추고 남성은 동영상을 찍는다. 찍은 걸 보고는 마음에 안 드는지 몇 번을 다시 춤추고 찍고 한다. 남의 나라에 와서 그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는 모스크 앞에서 서양 음악을 크게 틀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춤추는 건 그 나라 문화를 무시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종교는 다르더라도, 각자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한편 얼마 전 뉴스에서 모로코 지진 소식을 들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상자가 생겼고 쿠투비아 모스크도 무너졌다고 한다. 지금 이 시간,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드린다.)       


             

▲  마라케시 재래시장의 식료품점

ⓒ 김연순



마라케시 수크는 대형 재래시장으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한번 들어가면 자칫 길을 잃기가 쉽다. 좁은 길을 따라 온갖 점포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의류와 가죽제품, 식품과 향신료, 가죽제품과 온갖 수공예품, 그릇과 신발들까지 없는 게 없다. 몇 시간을 다녀도 계속 새로운 길이 나온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틈틈이 구글 지도를 켜고 다녔고 드디어 '벤 요제프 학교'까지 왔다.



벤 요제프 학교는 이슬람 신학을 가르치는 학교로 14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유서 깊은 학교다. 1960년 폐교되었는데, 900여 명의 학생들이 기숙하며 공부했다고 한다. 이런 학교들이 종교와 더불어 찬란한 이슬람 문화와 과학지식을 전수하고 유럽으로 전파하는 기능을 했다고 한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 천천히 둘러보았다. 1층에는 아름다운 중정이 있고, 2층이 학생들의 기숙사다.


             

▲  이슬람 신학교 벤 요제프 학교

ⓒ 김연순



중정을 가운데 두고 사방에는 회랑이 있는데 뜨거운 햇빛은 그늘진 회랑으로 들어서는 순간 사라지며 순식간에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전체 건물은 조형미가 뛰어나다. 흰색의 벽은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아라베스크 문양이 가득하다. 바닥과 일부 벽에 부착된 색색의 타일은 단조로움에 변화를 가져오고 생동감을 준다. 



벤 요제프 학교에서 나와 걷다 보니 힘들기도 하고 뜨거운 햇빛에 지치기도 했다. 이제 시원한 카페를 찾아 쉬어야 했다. 적당한 카페가 눈에 보여 남편에게 여기 들어가자고 했다. 남편은 예의 그 호기심이 또 발동했다. 조금 더 가면 더 좋은 곳이 나올 수도 있다며 또 나를 끌고 간다. 더위에 취약하고 다친 발목으로 인해 오래 못 걷는 나는 머리가 끓어올랐다. 벤 요제프 학교에서 충만해진 내 단정한 영혼은 멀리 달아나버리고, 나는 순간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만 가고, 여기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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