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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Oct 10. 2023

가우디의 삶이 배어있는 그 곳, 바르셀로나

은퇴한 부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2화)




▲  저 멀리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 김연순



저 멀리 초록잎 나무들 사이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보인다. TV 여행 프로그램과 책자에서 몇 번 보긴 했으나 막상 눈에 들어오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가까이 갈수록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거대한 높이도 그렇지만 뭐 하나도 평범치 않은 독특한 모양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아직도 건축 중인 성당은 한 켠에 공사 가림막이 있고 꼭대기엔 거대한 기중기가 달려있다. 매일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내일의 성당은 오늘 본 성당이 아닌 셈이다. 그리 생각하니 '오늘의 성당'을 한 장면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래된 티가 나는 그 모습에 더 끌린다


             

▲  은은하고 따스하게 비치는 파밀리아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 김연순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동안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세 번 갔다. 한국어 오디오가이드 투어로 첫 방문, 그리고 다음날 여행사에 신청해 둔 종일 일정의 가우디 투어 때가 두 번째 방문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미리 예약해 두었다. 세 번째 방문은 여행 시작한 지 5주쯤 지나 다시 바르셀로나로 왔을 때다.



  

매주 일요일 아침 9시에 인터내셔널 미사가 있다는 걸 알고 미사에 참석하느라 방문했다. 어떤 장소가 마음에 깊이 남아 다시 오고 싶으면 또 오는 것, 이게 바로 배낭여행의 참 맛 아니겠나.



1882년 카톨릭 신자들의 모금으로 시작된 성당의 설계는 다음 해인 1883년 안토니 가우디가 맡게 되었다. 가우디는 처음엔 다른 일과 병행했지만 1914년부터는 오로지 파밀리아 성당 건축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1926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성당의 건축은 계속되었고 현재까지도 진행중이다.



파밀리아 성당에는 세 개의 파사드가 있다. 파사드는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를 말한다. 성경 속 예수의 일생을 세 개의 파사드로 표현했는데 '탄생의 파사드', '수난의 파사드' 그리고 '영광의 파사드'가 그것이다. 각각의 파사드에는 네 개의 종탑이 있고 총 열 두개의 종탑은 예수의 열두 제자를 의미한다.



가우디는 살아 생전 탄생의 파사드를 완공했다. 수난의 파사드는 건축가 수비라치에 의해 1976년에 완공되었고 현재 공사 중인 영광의 파사드는 2026년 완공 예정이라고 한다. 가장 먼저 지어진 탄생의 파사드는 색깔부터 다르다. 거뭇거뭇한 게 세월의 때가 묻어 오래된 티가 난다. 왠지 그 모습이 더 끌린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오로지 기부금과 관광객들이 내는 성당 입장료로 공사비용을 충당한다고 한다. 입장료 내고 들어온 누구나 성당의 건축에 기여하는 것이라면서.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성당 건축에 벽돌 한 장이라도 올리는 것 같아 뿌듯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에 따스한 빛이 가득차 있다. 붉은빛도 초록빛도 파란빛도 모두 은은하며 따스해 보인다. 자연의 숲과 나무, 꽃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기둥과 천정, 조명 장식들이 내가 알고 있는 유럽의 다른 성당들과는 많이 다르다.



너무도 독특하고 특이한 구조와 장식을 보며 가우디의 상상력은 한계가 없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럴수가"란 감탄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더불어 낯설었을 그의 설계를 받아들이고 인정한 시민들도 존경스러웠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청혼하는 커플

ⓒ 김연순



조용히 의자에 앉아 가우디를 느끼며 묵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주변의 몇 사람이 박수를 치는데 보니까 한 쌍의 커플이 청혼을 하고 있다. '아, 성당에서 이런 일도 있구나' 하며 나도 박수 쳐주었다. "그래. 잘 살아라." 속으로 말했다. 몇 년 있으면 우리도 결혼한 지 40년이 된다. 남편과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조용히 웃었다.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곡선의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 7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그 중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비롯해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구엘 공원을 둘러 보았다. 카사(CASA)는 집이란 뜻이다. 카사 바트요는 바르셀로나 그라시아 거리에서 가장 화려한 집을 원한 건축주 조셉 바트요의 요청에 따라 만들어진 집이다. 외관부터 특이했다. 동화책에서 나올 법한 해골 모양의 발코니, 뼈 모양의 기둥들은 물론 물결 모양의 벽에는 용의 비늘 모양이 가득 붙어 있다.


             

▲  카사 바트요 실내에서 본 스테인드글라스

ⓒ 김연순



집 안으로 들어서니 모두가 곡선이다. 응접실의 의자도 벽난로도 창문도 창문의 손잡이도 모두 부드러운 느낌이다. 층층이 바다생물을 형상화 해 천정과 바닥 벽을 장식했는데 파아란 색깔의 스테인드글라스와 함께 바닷속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가뜩이나 파란색을 좋아하는 나는 홀딱 빠져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일일투어 가이드를 놓치고 말았다. 아래층으로 윗층으로 찾아 다녔지만 일행은 물론 남편도 안 보였다. 결국은 전화를 해서 찾았다. 



람블라 거리를 걷다가 골목으로 들어서니 야자수로 둘러쌓인 작은 광장이 하나 있다. 레이알 광장이다. 처음 들어설 때부터 마음이 끌렸다. 자꾸 가고 싶어 후에 두어 번 더 갔다. 레이알 광장 가운데는 분수대가 있어 걷다 지친 몸을 잠시 기대고 쉴 수 있었다.



그저 주변의 지나는 사람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쉼이 되었다. 서너 살 된 아기가 해맑게 웃으며 아빠로 보이는 사람과 축구를 한다. 바르셀로나 사람들답게 아기는 FC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아장아장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공을 찬다.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절로 웃음이 나왔다.


             

▲  레이알 광장에서 FC 바르셀로나 유니폼 입고 축구하는 어린이

ⓒ 김연순



축구하는 아기 옆에 특이한 모양의 가로등이 있다. 젊은 시절의 가우디가 설계한 작품이다. 건축가의 작품이라 해서 거리를 두지 않는다. 한 아이가 가로등 중간쯤 올라가 장난을 친다. 예술가의 작품과 일상이 이렇게 만나는구나 싶다.



말년의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에 몰두해 집에도 가지 않고 건축 현장 한 편에서 잠을 잤다. 옷차림도 신경쓸 틈 없어 누추한 외관으로 다녔다. 늘 가던대로 산 펠립 네리 성당으로 가던 중 전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 누추한 옷차림으로 인해 그가 가우디임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성당 건축에 빠져 외부로 얼굴을 비칠 일이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몰랐단다. 교통사고 당하고 노숙인으로 취급되어 허름한 병원에서 아무도 알지 못한 채 74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 가우디. 말년의 가우디와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저릿저릿 아팠다.



며칠 지나서야 알게 된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그를 예우하며 성대한 장례식을 치렀다. 그의 유해는 파밀리아 성당 지하에 안치되어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가우디 사후 100년을 기념해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신이 시작한 성당에 누워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을 가우디, 뿌듯해 할 것 같다.



파밀리아 성당 영광의 파사드 입구 쪽에는 현재 현수막들이 내걸려 있다. 입구로 진입하는 도로를 내야 하는데 인근의 주거지와 상가들의 철거를 둘러싼 이슈다. 해당 주민들은 현수막을 내걸고 반대하고 있다.



영광의 파사드를 완성하는데 주민들의 주거 시설을 반드시 철거해야만 할까? 우회하거나 기존의 길을 이용하는 방법은 없을지, 주민들의 생존권도 영광의 파사드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아닐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성당 지하에 누워 있는 가우디는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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