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부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1화)
오랫동안의 소원이었다. 스페인 한달살이. 하던 일의 임기를 마치고 혼자 떠나고자 했으나 그놈의 코로나가 길을 막았다. 2년을 기다렸고 드디어 올해 3월에 퇴직한 남편과 함께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남편과 24시간 내내 붙어있는 건 처음이다. 출발할 땐 둘이지만 돌아올 땐 따로따로 아닌가도 싶었다. 우리 꼭 같이 오자, 서로 째려보며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리고 동시에 똑같이 말했다.
"너만 잘하면 돼."
나이 드니 느는 건 배짱 뿐
스페인과 포루투갈도 그렇지만 모로코는 내게 더더욱 낯설고 막막한 나라다. 모로코는 그냥 끌린다며 남편이 오래전부터 간절히 원했던 곳이다. 아프리카 대륙은 처음이니 나도 좋았다. 세 나라의 언어는 물론 영어도 못하면서 호기롭게 배낭여행을 계획한 건 아마도 배짱? 나이 드니 느는 건 그저 배짱 뿐인 것 같다.
다섯 권의 여행 책자를 훑고 숙박지를 예약하고 현지의 항공, 기차 등 대략의 교통편 예약을 마쳤다. 숙박지는 숙박 앱을 활용했는데 중심지와의 거리, 주변환경, 청결도, 가격 등을 고려해 정했다. 남편이 대여섯 개를 골라 놓으면 최종 선택은 내가 했다. 어떤 도시는 내가 해봤는데 선택지가 너무 많으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캐리어를 꺼내 즉석밥과 라면, 밑반찬 몇 개와 접이식 휴대용 전기포트를 넣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휴대용 전기포트를 가져간 건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여행기간이 6주나 되기에 짐을 최소화 해도 트렁크 두 개가 거의 찼다. 소매치기가 많으니 가방은 무조건 앞으로 메야 한다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 앞으로 메는 손가방 두 개도 준비했다. 이제 드디어 출발한다. 오로지 구글 번역기와 지도만 믿고.
열세 시간을 날아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에 도착했다. 4월 5일에 출발했는데 도착해도 4월 5일이다. 공항버스를 찾아 조금 헤매다가 정류장을 발견하고 버스를 탔다. 옆에 표를 파는 곳이 있어 사려고 했는데 보아하니 타면서 직접 내기도 한다. 타면서 냈다.
내릴 곳을 놓칠까 봐 구글 지도를 켜고 얼마나 남았는지 수시로 점검했다. 40분쯤 지나 드디어 목적지인 카탈루냐 광장에 도착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거기가 종점이었다. 긴장했던 게 무색하게도. 종점에서 모두 내린다.
캐리어를 끌고 광장에 서니 아, 이제 진짜 스페인이구나 실감이 났다. 사방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도 하나같이 경이롭다. 세 개의 깃발이 날리는 건물이 특히 눈에 들어와 자세히 보았다. 스페인 은행이다.
▲ 스페인은행 건물 꼭대기에 걸린 세 개의 깃발. 왼쪽부터 바르셀로나 깃발, 스페인국기, 유럽연합 깃발
ⓒ 김연순
건물 맨 꼭대기에 스페인 국기, 바르셀로나 깃발, 유럽연합 깃발 세 개가 나란히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그래, 이게 바르셀로나지 싶었다. 스페인이면서 또 스페인이 아닌 지역 바르셀로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유럽에 왔으니 에스프레소를
숙소인 호텔까지 걸어서 6분. 몇 달 전에 발목을 다쳐 많이 걷지를 못한다. 그래서 비싸더라도 어쩔 수 없이 숙소는 무조건 시내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구글 지도를 보며 이리저리 지나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했다. 다행히 나는 지도 보는 눈이 밝고 지도 보는 걸 재밌어 한다.
미리 연습해 둔 영어로 무난하게 체크인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드디어 우리 방이다. 깔끔한 하얀 침대에 열 십자로 벌러덩 누웠다. 편안했고 긴장이 사르르 풀리며 웃음이 절로 나왔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잠시 쉬었더니 허기가 밀려왔다. 저녁을 먹으러 카탈루냐 광장으로 나왔다.
바르셀로나에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람블라 거리가 길게 펼쳐져 있다. 차도를 양쪽으로 가운데 넓다한 보도가 있는데 보도 위 아름드리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준다. 땡볕에 있다가도 그늘에 들어서면 시원하다. 습기 없는 건조한 기후가 그리 만든다.
보도에 길게 상가들이 늘어서 있고 카페와 식당, 각종 간식거리들과 기념품 가게 점원들이 서로 오라며 손짓하고 있다. 중간중간에 빈 의자들도 있어 걷다 힘들면 앉기도 한다.
▲ 보케리아 시장
ⓒ 김연순
여행책자에서 본 보케리아 마켓이 눈에 보여 들어가 보았다. 입이 절로 벌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고 각양각색의 먹을거리들이 그득했다. 타파스, 올리브, 하몽 등 스페인의 대표적인 먹을거리 뿐 아니라 치즈, 생선, 육류 등 온갖 종류의 음식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 관자를 얹은 타파스
ⓒ 김연순
배가 고파 타파스 가게로 향했다. 타파스는 해산물, 고기, 채소, 치즈 등 각각의 재료를 간단히 요리해 작은 접시에 담은 음식을 말한다. 손으로 들고 한 두 번에 먹을 정도의 작은 크기다. 즐비한 타파스 가게 중 하나를 골라 자리잡고 앉았다.
메뉴판을 한번 훑어보고 진열되어 있는 타파스 종류도 보며 주문했다. 나는 관자와 버섯, 남편은 하몽이 들어있는 타파스를 먹었다. 음료는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한 잔씩. 먹다보니 먹고 싶은 게 더 보여 두어 개 더 먹었다. 맛보려고 들어간 건데 배부를 때까지 먹어 버렸다.
다시 나와 람블라 거리를 따라 쭉 걸었고 걷다 보니 바르셀로나 해변에 이르렀다. 바르셀로나 해변은 지중해에 접해 있다. 해변 근처 작은 광장에 높은 탑이 보인다. 가까이 가 보니 탑 위에 동상이 있는데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 콜럼버스 동상
ⓒ 김연순
이사벨 (여)왕의 지원을 받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스페인을 해상왕국으로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스페인 경제부흥에 지대한 공을 세운 콜럼버스는 스페인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읽은 세계위인전집에도 콜롬부스가 있었고 그는 탐험가로서 위인으로 아직도 추앙받는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그는 아메리카 땅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원)주민들에게는 약탈자가 아닌가. 최근에는 콜럼버스에 대한 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콜럼버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번에).
▲ 바르셀로나 해안가
ⓒ 김연순
바르셀로나 해변엔 여유롭게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데크에 눕거나 나란히 앉아 이야기 나누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놀이기구에 줄에 앉아 겅중겅중 뛰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내 마음에 평온이 햇살처럼 쏟아진다.
바닷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유럽 대륙에 와서 아메리카노나 마시면 되겠나. 호기롭게 에스프레소를 주문해 마셨다. 물론 설탕 듬뿍 넣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