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나 너무 기대돼"
며칠 전부터 하루에도 수십 번 듣는 말이었다. 새로운 유치원에 가기로 한 후부터.
제주도에 내려가기 전 다니던 유치원을 그만두었다. 1년이 될지 그 이상이 될지 알 수 없었기에. 같은 반 친구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선생님들이 주신 선물을 받고 기쁨 반 아쉬움 반으로 유치원을 나왔다. 그 어떤 날보다 화창한 날이었다. 시아의 새로운 시작을 반겨주듯이.
제주도에 내려와서 거의 3개월 동안은 나와 아내가 시아의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인터넷을 뒤져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이와 실험, 만들기 등을 찾아서 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오늘은 어떤 반찬을 할까 고민하고. 매일매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지만 시아와 놀아주는데 한계가 왔다. 엄마, 아빠와 노는 것도 좋지만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놀아야 하는데. 항상 아쉬웠다.
"엄마,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놀다 갈래"
유치원이 끝나면 항상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던 시아였다. 그네도 타고, 달리기 시합도 하고, 친구들과 같이 간식도 먹고. 가야 할 시간인데도 더 놀겠다며 투정 부리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 놀이방에서 오순도순 귀엽게 놀기도 하고, 친구들과 같이 밥도 먹고.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시아였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아내가 집 주변에 괜찮은 유치원을 찾았다. 다행히 바로 입학할 수 있었고, 가게에서 차로 10분 거리로 가까웠다. 그전 유치원처럼 걸어 다닐 수는 없었지만 차 타고 등하교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유치원 앞은 잔디밭으로 되어 있어 멀리 가지 않아도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었다.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또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수녀님이 원장선생님이어서 좀 더 안심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종교는 없지만 천주교는 다른 종교보다 조금은 더 믿음이 갔다.
적응력 최고인 시아에게도 시골 유치원은 쉽지 않았나 보다. 한동안은 계속해서 전에 다니던 유치원 친구들 이야기만 했다. 새로운 유치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만 서울에 있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원장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보았고 조금은 이해가 갔다.
"제주도 아이들이 너무 내성적이어서 금방 친해지기가 힘들 거예요. 특히 시아처럼 적극적인 아이에게는 조금 힘들 수도 있어요."
원장 선생님의 이 한마디가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시아는 다가가려 하는데 받아주지 않으니 얼마나 실망했을까. 하지만 이것도 시아가 살아가는데 다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점점 자라면서 맞이하게 될 낯선 공간들. 너무 이른 시기에 처음 접하는 것이지만 이것 또한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적응해 나가는 게 삶이니.
10명 남짓한 같은 반 친구들. 시골 유치원이라 학생수가 많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친구들도 있고, 시아처럼 타지에서 온 친구들, 외국인 부모를 가진 친구들. 다양한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서울 유치원은 같은 단지 내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여기서는 다양한 곳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환경으로 살아온 친구들과의 새로운 생활.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잘 적응해 나갈 것이라 믿었다.
"시아야 일어나. 유치원 가자."
아내 목소리가 아닌 내 목소리다. 시아 등원과 하원은 이제 하루일과 중 나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매일 자고 있는 모습만 보고 출근하던 나에게 이제는 시아와 함께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나 같이 밥을 먹는 일상으로 바뀌었다. 늦잠 자는 바람에 아침밥을 거르기 일쑤지만 시아와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머리도 빗겨주고, 예쁘게 묶어주고, 귀여운 옷을 입힐 때.
'육아휴직하길 진짜 잘했다.'
마음 속으로 몇 번이고 외쳤다.
차에 앉아 밤새 꾸었던 꿈 이야기를 듣고 시아가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면 금세 유치원에 도착했다. 지하철이 아닌 차,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닌 딸과의 동행. 이 모든 것이 이제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일상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고, 한마디라도 더 이야기하고 싶었던 나에게 이런 생활은 꿈만 같았다. 그리고 아침잠이 많은 아내에게도 꿀맛 같은 아침시간을 더 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아빠, 친구들이랑 놀다 갈래."
"미안해. 아빠 빨리 가서 가게 준비해야 해."
하원할 때마다 반복되는 실랑이. 방법이 없어 안타까웠다. 5시부터 가게가 시작되니 시아를 데리고 빨리 갈 수밖에 없었다. 놀이도 10분 정도 남짓한 시간뿐이니.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끝나고 놀고 싶었을까. 서울에 있었을 때처럼 놀고 싶을 때까지 놀고 집에 가면 좋을 텐데. 유치원 끝나는 시간은 항상 '미안해'라는 불편한 친구와 만나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아도 바로 가야 된다는 것에 익숙해졌고, 나도 시아를 위해 꼭 무언가를 챙겨갔다. 맛있는 간식 아니면 가게 앞 산책하기 등.
살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놓아주어야 하는 법. 시아의 등하교를 같이 할 수 있어 행복했지만, 시아의 놀이 시간은 사라져 버렸다.
나의 욕심으로 인해 시아가 힘들어하는 것은 아닐까. 시아를 위한다고 한 것이 오히려 해가 되지 않았나 생각에 잠겼다. 두 가지 다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상황.
나의 최고의 선택은 가진 것에 대해 더 많은 행복을 느끼고, 없는 것에 대해 최대한 생각하지 않는 것. 못해준 만큼 다른 방법으로 꼭 더 해주겠다는 마음.
"시아야. 오늘은 아빠랑 바닷가 드라이브하면서 가게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