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잘 다니다가 갑자기 휴직하고 제주도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 가장 걱정을 많이 하셨던 분들은 바로 부모님이였다. 아버지, 어머니, 장인어른, 장모님 모두. 아버지, 어머니는 '왜 힘들게 장사하려고 하느냐.'부터 시작해서 '회사에 있으면 따박따박 월급도 잘 나오는데 왜 사서 고생이냐.' 등 잔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바뀌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다. 지금까지 내가 결정한 일을 바꾼 적이 없었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으면 잘 이야기 않는 나 였다.
장인어른, 장모님도 힘든데 왜 내려가느냐고 하셨지만 처남과 함께 가게를 운영한다고 하니 조금은 안심하셨다. 무작정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처남이 터를 잡고 있는 곳으로 가기 때문에. 그리고 처남 잘 도와주라고 이야기 하셨다. 혼자 제주도에서 사느라 외롭고 힘들었을텐데 우리가 내려간다고 하니 장인어른, 장모님도 한편으로는 잘 됐다 생각하신 것 같았다.
가게가 어느 정도 자리잡을 무렵. 걱정하시는 부모님께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100번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한번 직접 와서 보시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제주도 아닌가. 내려오시면 어디라도 모시고 갈 수 있으니까. 경치 좋은 곳으로.
"시아야. 할아버지, 할머니 오신데."
"진짜?언제?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시아다. 양쪽 집 통틀어 손주가 시아밖에 없어서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시아. 할아버지, 할머니가 항상 이뻐해주고, 용돈도 주시니 안좋아 할 수가 없다. 오시기 며칠 전부터 매일매일 날짜를 세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오실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장인어른, 장모님이 먼저 오셨다. 마침 처남과 함께 살고 있어서 따로 방을 잡을 필요가 없었다. 역시나 장모님은 우리 먹으라고 반찬을 엄청 많이 싸오셨다. 특히 나와 처남이 좋아하는 올망대 가루까지 가지고 오셔서 직접 올망대 묵을 만들어 주셨다. 어디가서도 먹어보기 힘든 음식. 장모님이 해주시는 음식은 최고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에 자리 잡은 시아는 그동안 유치원에서 배웠던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다. 어찌나 말이 많던지. 하루종일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밤에 잘 때도 할아버지 옆에서 잔다고 베개까지 방에서 가지고 나왔다. 장인어른, 장모님도 시아가 같이 잔다고 하니 정말 좋아하셨다. 오랜만에 아내와 나도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장인어른, 장모님을 모시고 가게로 갔다. 직접 꾸민 소품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커피를 마시며, 가게를 둘러보던 장모님, 장인어른도 만족해하셨다.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부모님은 항상 자식걱정을 하시지 않나. 자식이 성인이 되어도.
저녁은 흑돼지 집에서 다같이 먹었다. 오랜만에 다같이 먹는 것도 즐거웠지만 그날따라 손님들도 많았다. 장사 잘되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뿌듯했다. 장사가 안될까 노심초사 하신 부모님께 잘 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역시 하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구나.
아버지, 어머니는 동생과 함께 설 연휴 때 내려오셨다. 평일에는 아버지, 동생 모두 일을 해야했기 때문에 다같이 올 수 있는 시간은 연휴 밖에 없었다.
연휴는 식당하는 사람에게는 보너스와 같다.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기 때문에 문을 열면 평소의 배가 넘는 손님들이 찾아온다. 역시나 이번 연휴에도 손님들로 가득찼다. 어쩔수 없이 부모님은 밖에서 대기 할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자리를 마련할 수가 없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계신 부모님을 보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장사가 잘 되는 모습도 보여드려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장사가 잘 되어야 부모님께 할말이 있으니까.
겨우 자리를 마련하고 직접 고기를 구워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짝 부모님도 놀란 눈치였다. '이렇게 손님이 많다니.' 설 연휴라는 특수가 있긴 했지만 뿌듯했다. 고기도 맛있다고 하시고, 특히 동생은 지금까지 먹어본 고기 중 제일 맛있었다고. 제주도에 내려온 보람이 있었다.
저녁식사가 끝나갈 무렵 부모님은 아내, 시아와 함께 산방산 근처 숙소로 가셨다. 모시고 가야하는데 가게 정리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처남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금 일찍 퇴근하긴 했지만 그래도 밖은 어두웠다. 손님이 많아 신나게 일했지만 뭔가 씁씁한 기분. 평소 같았으면 다같이 제주도에 놀러와 같이 밥을 먹고 숙소에 가서 내일 뭐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을텐데. 아쉬운 마음이 몰려왔다.
연세가 많으신 장인어른, 장모님과는 제주도에서 유명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같이 먹고, 아버지, 어머니, 동생과는 산방산 주변을 구경했다. 부모님이 오셨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낮에 가게를 열어야했기에 시아와 나만 부모님들과 함께 했다. 반쪽 여행이었다.
예전에 일 때문에 태국에 파견을 간 적이 있었다. 이때도 아내와 함께 있었고 부모님들을 모셨다. 특히 아버지, 어머니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하지만 이때는 휴가를 받아 온전히 부모님들과 여행을 다니고 같이 밥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이번엔 그렇게 하지 못해 죄송했다.
부모님은 더 안쓰럽게 보시지 않았을까.
'회사에 그냥 있었으면 이런 고생 안해도 되는데.'
만약 나중에 시아가 커서 나와 같은 상황이 되었다면 나도 안타깝게 시아를 볼 것 같다. 부모님의 마음은 한결같으니. 더 잘되서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다음번엔 내가 아닌 아르바이트생이 구워주는 고기를 부모님과 함께 먹으리라, 아니 아르바이트생에게 가게를 맡기고 다른 곳에 가서 저녁을 먹으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