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발레 학원에 가다

by 시아파파

"시아야, 발레학원 찾았어."

"정말, 그럼 다시 발레 배울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엄마가 벌써 등록해 놨어. 다음 달부터 다닐 수 있데."

"오예~ 빨리 갔으면 좋겠다."


서울에 있을 때 유치원에서 방과 후 수업으로 발레를 들었던 시아. 어찌나 좋아하던지 집에서도 발레 영상을 틀어놓고 따라 할 정도였다. 제주도에 와서도 계속 발레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드디어 아내가 집에서 다닐 수 있는 학원을 찾은 것이다.


제주 영어 마을.

집에서 20분 정도 가면 영어 마을이 있다. 국제학교가 모여 있는 곳. 코로나로 인해 해외 유학이 어려운 상황에서 제주 국제학교는 이들이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었다. 한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닐 수 있으니. 그렇기에 발레학원도 찾을 수 있었다. 시골 동네에서 발레학원은 꿈도 꿀 수 없었는데.


처음에 이곳을 둘러볼 때 나도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성공해서 시아도 국제 학교에 보내야겠다.' 지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런 꿈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런 꿈마저 없었다면 힘든 일을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영어 마을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문명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유명 커피숍도 많고, 학원도 많고, 식당도 많았다. 이제 매주 시아와 함께 와야 하는 곳이기에 더 친숙해지기도 했다. 시아가 발레를 하는 한 시간 동안 커피숍에 앉아 잠깐의 휴식을 가질 수 있는 곳이기에.


드디어 발레 첫날.

아침 일찍 제일 먼저 일어난 시아가 나와 아내를 깨웠다.

"엄마, 아빠 빨리 일어나. 발레학원 빨리 가자"

"갈 시간 아직 안 됐어. 더 자"

"싫어. 잠 안 와. 너무 긴장되고 떨려."

더 자고 싶었지만 잘 수가 없었다. 새로 산 발레옷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니. 서울에서 입던 발레옷이 있었지만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의미로 예쁜 발레옷을 사주었다. 낯선 제주도에서 고생하는 시아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학원으로 가는 길은 모두 들떠 있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날씨는 비가 오락가락해도 우리 마음은 한결 같이 스마일 그 자체였다. 시아가 행복해하면 아내와 나는 더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학원 문을 열자마자 우리 모두 얼어붙었다. 안에 시아 또래 친구들이 한 명도 없는 것이었다.

'이상하네. 우리가 그렇게 일찍 온 것도 아닌데....'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다가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발레학원 등록해서 수업받으려고 왔는데요"

"예? 여기는 아이들 반이 없는데요. 다른데 아닌가요?"

"아닌데 여기 맞는데요."

아내가 등록한 곳 사진을 보여주자 선생님이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이름은 맞는데요. 지점이 달라요. 다시 한번 확인해 보세요."


정말 황당했다. 아내가 이런 실수를 할 사람이 아닌데. 알고 보니 인스타에 올라온 내용에 지점이 적혀있지 않았다. 글 중에 적혀 있는 링크를 타고 가서야 어느 지점이라고 나와있었다. 당연히 이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착각한 것이었다. 문제는 시아였다. 당황해하는 아내를 보며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나왔다. 미안하다며 시아를 달래는 아내의 모습도 너무 안쓰러웠다.

시아를 안고 차로 가는데 정말 너무 미안했다. 한순간에 기쁨이 절망으로 바뀌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다른 곳을 찾아냈다. 정말 다행이었다. 시아가 다닐 수 있는 학원을 찾기 위해 노력한 아내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했다. 대성통곡하는 시아를 봤으니 더 열심히 찾은 듯 보였다. 다행히 저번에 찾은데 보다 더 가까운 곳이었고 영어 마을 내 상가 건물에 있어서 발레 끝나고 간식 먹을 장소도 많았다.


드디어 가는 날.

저번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등록할 때부터 위치를 확인했고, 시간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학원 앞에 도착하니 많은 차들이 비상 깜빡이를 켜고 도로에 서 있었다. 모두 학원에 아이들을 보내려는 차였다. 이것만으로도 '이번에 제대로 왔구나.' 안심이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수강생들이 많았다. 국제학교가 있어 영어마을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토요일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발레학원에 오는 아이들이 많았다. 주말인데...


이렇게 매주 토요일 아침. 시아는 즐겁게 발레 학원을 다녔다. 내가 데리고 갈 때도 있었고 아내가 갈 때도 있었다. 주말 오전이라 다른데 놀러 갈 수는 없었지만 즐거워하는 시아를 보면 어떤 것이 시아가 더 좋아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가끔 발레 끝나고 갔던 분식집. 엄마 몰래 라면과 김밥을 사 먹으며 웃고 떠들던 곳. 아직도 이곳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닌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발레 학원 시간도 평일로 바뀌었다. 많은 학생들이 점점 주말에 나오기 힘들었나 보다. 유치원 끝나고 발레를 가니 주말에 시간이 생겼다. 평일에 발레하고 주말에 놀러 가고. 점점 즐거운 일이 많아졌다. 시아의 표정도 제주도에 처음 내려왔을 때보다 훨씬 좋아졌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가게 일에 익숙해지고, 장사도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시아도 유치원에 완전히 적응했고, 좋아하는 발레도 다니고. 이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유치원 겨울방학이 다가올 때쯤 학원에서 발표회를 한다고 공지가 왔다. 거의 1년 동안 배웠던 만큼 시아도 공연하는 것에 대해 기대하고 있었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하지 못했는데 올해부터는 다시 한다고.


하지만 시기가 문제였다. 가게를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로 결정한 그 시기였다. 공연을 준비하려면 연습도 많이 해야 해서 학원에도 자주 와야 하는데. 서울에 올라가 있을 시간과 겹친 것이었다. 또 한 번 시아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수업은 공연 때 할 춤으로 연습하는데 시아 혼자만 공연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연습은 같이 하지만 따로 떨어져 있는 느낌. 결국 며칠 일찍 학원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서울에 올라가야 해서 그만두려고 했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유치원 때 재롱잔치, 노래자랑 등 매년 해왔던 행사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시아 춤추는 모습,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이번 발레공연도 겨우 찾아온 기회였는데 또 할 수가 없다니. 너무 안타깝고 미안했다. 다 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가 없으니.....


발레는 제주도에 있으면서 시아가 했던 유일한 취미 생활이었다. 아마 이것으로 힘든 일상에서 많은 힘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면 힘든 생각이 날아가 버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