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
'일정한 임무를 주어 사람을 보냄'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다. 회사 취업 후 항상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그 단어. 한번 파견을 나가면 몇 년이고 한국에 들어오질 못하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년, 태국에서 3년, 이집트에서 2년. 이것이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제주도에서 1년 반 동안 있게 되다니.
솔직히 제주도는 회사에서 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간 것이다. 그런데 해외로 파견 가는 것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도 친구들과 만날 때 제주도로 파견 갔다 왔다고 한다. 사전적 의미처럼 나에게는 임무가 있었다. 제주도로 파견 가는. 바로 가족과 함께하는 것. 이것이 이번 파견의 임무였다.
어찌 보면 제주도에 있는 1년 반 동안 임무는 잘 수행한 것 같다. 하루종일 같이 붙어 있었으니.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만 그렇고 속을 들여다보면 반은 실패한 임무였다. 같이 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어떻게 같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을. 시아와 같이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이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적었으니. 나 스스로 반은 실패한 파견이었다.
해외에 파견을 나가면 분기에 한번 휴가를 갔다. 하지만 제주도에 있는 1년 반 동안 서울에 딱 2번 갔다. 추석 때 한번 (가게 시작하기 전에) 그리고 일이 생겨 가게를 쉴 때. 어찌 보면 해외파견 생활보다 더 팍팍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제주도에 있으면서 뭐가 힘들어' 하겠지만 여행으로 오는 제주도와 살기 위해 온 제주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여행으로 온 제주도는 다 예뻐 보이고 다 신기해 보인다. 하지만 삶의 제주도는 그냥 일상이다. 매일 시아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가게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회사를 다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냥 장소만 바뀌었다는 것,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바뀐 것, 출퇴근 시간이 다르다는 것뿐이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똑같다는 게 해외파견과 똑같았다. 해외파견을 가면 한정된 사람으로 몇 년 동안 같이 일하게 되는데 제주도에서도 똑같았다. 아내와 처남, 처남 친구와 친구 여자친구. 1년 반동안 바뀌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숙소도 같이 쓰고 (처남 친구와 여자친구는 빼고) 술도 항상 같은 사람과 마시게 되니 이것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러하니 중간중간 찾아오는 외로움. 가족들과 함께 있어 좋았지만 친구들을 만날 수가 없으니 이것도 힘든 것 중 하나였다. 가끔 전화를 하며 안부를 묻곤 하지만 잠깐이었다. 그래도 어쩌다 친구들이 찾아오면 너무 반가워 이것저것 선물을 가득 손에 쥐어주었다. 이렇게라도 외로움을 날려버려야지. 아내도 이 부분을 가장 힘들어했다. 오죽했으면 친구 가족이 놀러 왔는데 재수 씨가 아내에게 "친구 만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이 시골에 어떻게 있어요." 하며 아내를 위로해 줬다.
일하는 시간도 파견 나갔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 6시까지 일했던 생활이 오전 11시에 출근해서 저녁 12시에 끝났으니 일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해 버렸다. 이번 일은 회사가 아닌 우리 가게를 위한 일이었기에 마음가짐은 달랐지만 그래도 몸이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언제쯤 이런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무척이나 고민을 많이 했었다.
나에게 제주도 파견은 다른 파견과는 아주 특별한 파견이었다. 나 스스로 선택해서 왔고,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었고, 회사가 아닌 우리 가게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를 선택했으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진리가 여기서도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었다. 가족들과 함께 힘들이지 않고 즐겁게 놀면서 살 수는 없었으니까. 모아둔 돈이 있었지만 마냥 쓸 수만은 없었기에 생활비 걱정도 해야 했고, 그렇기에 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가게를 운영하는 것, 장사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지 몰랐다. 역시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