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파견 날짜가 정해졌다. 프로젝트 시작부터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본사에서 진행해 왔는데 이제 현장에서 할 때가 온 것이다. 오랜만에 나가는 현장. 사우디 현장 나갈 때는 신입사원이어서 아무것도 모른 채로 나갔지만 이제는 본사에서부터 진행해 왔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먼저 비자 신청부터 해야 했다. 관광으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취업비자를 받아야 했다. 나 혼자만 가는 것이면 회사에서 진행해 주지만 아내와 같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챙겨할 것들이 더 많았다. 현장에 있는 관리 담당자에게 가족 비자 신청하는 방법을 문의하였고, 직접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아와야 한다고 했다.
담당자가 알려준 서류를 챙겨서 아내와 함께 태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한남동에 위치한 태국 대사관은 지하철을 타고 버스도 타고 내려서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찾는 길은 힘들었지만 아내와 함께 태국을 간다는 생각에 힘내서 갈 수 있었다. 만약 가족들과 함께 파견을 나간다고 하면 현장 관리 담당자에게 꼭 문의해 보고 준비를 해야 한다. 현지에 나가서 준비하려면 서류 준비부터 대사관 방문까지 한국에서 하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한 일은 이동 근무 신청을 하고 현장 작업복을 신청하는 것이었다. 현장을 나가게 되면 소속이 시운전 팀에서 태국 프로젝트 팀으로 변경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입을 근무복도 정해진 수량만큼 신청할 수 있었다.
시스템 상으로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이제는 주변 동료들에게 인사를 다녔다. 현장에 나가면 또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기에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했다. 같이 차도 마시고 점심도 같이 먹고 친한 동료들과는 저녁에 술 한잔도 하고. 팀에서도 현장 나가서 잘하라고 맛있는 저녁도 사주셨다.
회사에서 준비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내고 태국으로 가기 전 며칠 동안 휴가를 냈다.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친구들도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국으로 가져갈 짐들도 챙겨야 했다. 부모님은 또 현장 나간다고 많이 아쉬워하셨다. 2년 가까이 본사에 있으면서 집안 행사에도 참석하고 얼굴도 자주 볼 수 있어서 좋아하셨는데. 장모님, 장인어른도 결혼 후 처음으로 현장에 나가는 거라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해 주시고 태국에 가져가라고 건강식품도 싸주셨다. 특히 이번에는 아내도 같이 나가는 것이라 더 걱정을 많이 하셨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비행기를 타러 가는 날. 밤새 잠을 못 잤다. 기대 반 걱정 반. 새로운 곳에서 일을 한다는 기대와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내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아내와 같이 가기 때문에 아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걱정은 뒤로하고 우리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무사히 태국에 도착했다. 역시나 후끈한 공기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고, 회사에서 준비해 둔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지난번에는 혼자였지만 이번엔 아내가 옆에 있었다. 아내가 옆에 있으니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태국 현장에는 가족들과 함께 나온 직원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숙소는 항상 북적였다. 직원들도 많았지만 가족들도 많았고 아이들도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태국이라는 나라 특성상 가족들이 지내기에 안전한 나라였고 아이들에게 외국인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이 많이 있었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해외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은 외국인 학교에 다닐 수 있으니. 아직 아이는 없었지만 나중에 또 태국 프로젝트가 있다면 꼭 아이들과 함께 오고 싶었다.
아내를 숙소에 내려다 주고 나와 동료들은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해 먼저 파견 나온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윗분들에게도 인사를 드렸다. 이제 이곳이 나의 사무실이었다. 마련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앉아 있으니 기분이 새로웠다. 며칠 사이에 일하는 공간이 바뀌었으니.
적응할 틈도 없이 나보다 먼저 온 후배와 함께 현장을 둘러보았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많은 작업자들과 장비들이 분주히 돌아다녔다. 이제 태국 사람들과 일할 시간이 된 것이었다. 태국은 사우디와 다르게 작업자 대부분이 태국 사람들(자국민)이었다. 사우디에서는 인도, 네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리고 여자 작업자들이 많이 보였다. 태국은 여성의 사회 참여 비율이 높아 남자, 여자 구별 없이 다 같이 일을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웬만한 남자들보다도 더 열심히 했다. 사무실에도 여직원이 정말 많았다. 하나하나 태국 문화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저녁은 환영의 의미로 PD님께서 시운전 팀 전원을 초대하셨다. 멋진 바다가 보이는 해변가에 위치한 레스토랑. 그곳에서 노을을 보며 먹는 맛있는 태국 음식. 함께 참석한 아내도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에 반해버렸다. 이렇게 태국에서의 첫날이 지나갔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