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새로움 사이

by 루나

지난주, 미국 친구들에게서 'Happy Thanksgiving!'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 한마디가 오래 묵혀둔 감정을 건드렸다.

햇살 가득한 캘리포니아에서 지내던 때,
매년 11월 마지막 주가 되면 새벽부터 유명한 햄가게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나도 두툼하게 바베큐 향이 밴 그 스페셜 햄을 사 들고 오면 집안은 어느새 땡스기빙 특유의 활기가 돌았다.

터키를 오븐에 넣으면 버터와 로즈메리, 타임 향이 집안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터키가 익어가는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는 어느새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그 시간쯤이면 친척들과 친구들이 하나둘 문을 두드리며 집에서 구워온 파이나 작은 와인 한 병 같은 따뜻한 마음을 들고 들어왔고,
문이 열릴 때마다 서로 반가움에 허그를 나누고 큰 웃음으로 인사하곤 했다.

그날만큼은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고, 모두가 조금씩 마음을 풀어놓으며 집안이 따뜻한 온기로 천천히 가득 차 오르곤 했다.
삶이 아무리 복잡해도 그날만큼은 서로의 1년을 이야기하고,
누구든 마음을 조금 더 내어놓던 날들이었다.
그 메시지를 받고 나니 그런날들이 사진처럼 선명해졌다.

다시 한국에서 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역이민자로서 느끼는 작은 비애와 그리움, 그리고 고마움을 조심스럽게 글로 꺼내보고 싶어졌다.

미국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나는 다시 한국에 생활의 터전을 마련했다.
몇 년에 한 번씩 방문하긴 했지만 막상 ‘살기 위해’ 돌아오니 예전에 떠난 나라가 아니라 또 다른 세상에 도착한 것 같았다.

한국의 변화는 빠르고 섬세하고,
때로는 무서우리만큼 기술이 앞서 있었다.

어느 쇼핑몰 주차장에서 차 위치를 잃고 당황하던 순간,
안내 화면에 번호를 입력하자 곧바로 내 차가 나타났다.
그 작은 화면이 주는 편리함이 그날따라 유독 크게 마음에 와 닿았다.

아파트에서는 주머니에 휴대폰만 있을 뿐인데 현관문이 스르르 열리고,
엘리베이터가 마치 나를 ‘기억하는 사람’처럼 문을 열어주고 도착 층까지 눌러져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생활은 모든 것이 앱 하나로 해결됐다.
집문도 열쇠가 필요 없고, 난방부터 택배 확인, 방문차량 등록까지 버튼 한 번이면 충분했다.

그러다 문득, 미국에서 살 때의 작은 해프닝이 떠올랐다.
우리 세 식구 모두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문을 탁 닫고 나온 날.
40마일 떨어진 곳까지 열쇠를 받으러 왕복 두세 시간을 운전해야 했던 그 어이없던 밤.
지금 생각하면 참 불편한 일이었지만,
그 단순하고 느슨한 순간들마저 왠지 그리워졌다.

아마 그래서였을까.
한국의 편리함이 분명 좋으면서도,
문득 미국에서의 느린 시간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물론 그에 비해 미국에서의 삶은 늘 작은 긴장과 피로 속에 흘러갔다.
공공기관에 갈 때면 말을 잘못 이해하면 어쩌나, 억양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까...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고,
언어의 벽은 늘 나를 멈춰 세웠다.

병원은 매번 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아플 때 당장 의사를 만나기 어렵다는 사실은 몸보다 마음을 더 지치게 했다.
이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한국의 촘촘한 시스템은 때때로 ‘부러움’ 이상의 감정이었다.
마치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편리한 나라임에도 정작 사람 사이의 온도는 조금 멀게 느껴지곤 했다.

엘리베이터에서는 눈을 맞추며 인사하고 싶어도 대부분의 시선은 스마트폰에 머문다.
미국에서 당연했던 그 작은 미소 하나가 이곳에서는 드물었다.

성당에서도 비슷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순간,
나는 습관처럼 웃으며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건 무표정과 형식적인 인사였다.
작은 차이였지만 마음 한켠이 쓸쓸해진다.

어린아이들의 조숙한 말투도 가끔은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이곳의 빠른 속도가 아이들에게도 스며든 듯해 놀라면서도 마음 어딘가 무거워지기도 한다.

두 나라 중 어느 곳이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놀랍도록 편리하고 안전하며 세상이 빠르게 굴러가는 나라이고,
미국은 불편하고 느리지만 사람들의 여유와 따뜻함이 깊이 남는 곳이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살아보니 조금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드물 만큼 풍요롭고 편리한 나라가 되었는데 정작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당연함’으로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는 풍요가, 역이민자인 나에게는 늘 새롭고 눈부시게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두 세계의 장단점을 마음속에서 저울질하며 산다.
한국의 편리함 속에서 미국의 따뜻함을,
미국의 자유 속에서 한국의 안정감을 그리워하며
그 사이의 균형을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