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by 루나

이제 겨우 11월 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하기엔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나는 언제나 할로윈이 끝나는 싯점에 집안곳곳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다.

이 설레임이 나는 좋다.

마치 누군가 크리스마스 미션을 주는 듯 하다.


매년 11월 10일쯤일것이다.

그 무렵이 되면 LA에서는 KOST FM이 24/7 holiday music으로 전환한다.

광고없이 끝없는 캐롤이 흘러나온다.

이때를 나는 은근히 기다린다.


그 무렵이면 또 스타벅스의 레드컵이 등장한다.

언젠가부터 빨간 컵 중앙의 초록 사이렌 마크는

나에게 ‘홀리데이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 되어버렸다.

매장에 들어서면 커피 향에 계피와 설탕 향이 스며들어 나를 한껏 들뜨게 한다.

그 순간, 괜히 목도리를 두르고 싶어진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도 11월만 되면 내 마음은 벌써 연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 시즌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느끼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나는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다.


그때 나는 홈디포에 가 줄을 서 프레쉬 컷 생트리를 사는것도 즐거웠다.

지저분해진 목장갑을 낀 볼 빨간 백인 청년이 내 차 지붕 위로 나무를 번쩍 실어 올려 준다.

그 모습이 어쩐지 징글벨 캐롤과 딱 맞아떨어지는 장면처럼 느껴져 좋다.


나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중 크리스마스 캐롤은 단연 일등이다.

평소엔 음치에 가까운 내가, 이때만 되면 머라이어 캐리가 된다.

흥얼거리다가 아는 가사가 나오면 갑자기 성량이 커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안 되는 가성도 이때만큼은 '이게 되네'..하며 뿌듯해 한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인트로 종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마이클 부블레가 It’s beginn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하면 달콤한 핫초코 향이 코끝을 스치고,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가 흐르면 노란불빛 가득한 거리에 함박눈이 내리는 장면이 영화처럼 떠오른다.


LA의 겨울은 기껏해야 10도 내외다.

그래도 겨울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마저도 겨울 같았다.

나는 일부러 컵라면을 들고 베란다로 나가 호호 불어 먹곤 했다.

비 냄새와 따뜻한 국물의 김이 어우러지던 그때, 나만의 여유로운 겨울을 지내는 것이 나는 좋았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집안 한구석에 작은 ‘크리스마스 빌리지’를 정성껏 꾸미던 모습이 떠오른다.

눈 내린 마을에 반짝이는 미니 빨간 지붕 집들,

작은 전구들은 은은한 불빛을 내고,

마을 한가운데엔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인다.


그곳은 핀란드 산타마을도 부럽지 않을 만큼 섬세하고 정성스러웠다.

엄마를 아는 지인들은 그 기쁨을 알아차려,

눈 덮인 작은 집 하나, 트럭 위에 올려진 미니 트리 하나씩을 선물하며 함께 이 즐거움을 나눈다.


그 빛과 장식 사이로, 엄마의 동심은 매년 다시 깨어나고,

그 따스한 미소는 집안을 환하게 채운다.

엄마의 감성을 나는 자연스레 닮아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언젠가 다녀온 스위스 알프스에서 찍힌 내 모습은 추위에도 행복에 젖어 환하게 웃고 있다.

그 순간의 차가운 공기와 눈부신 설경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곧 크리스마스 계절이 오기에 더욱 특별하고 즐거웠던것같다.


LA에서 ‘진짜 겨울’을 느끼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산 위 스키장으로 향하는 일이다.

빅베어 스키장에서 보내던 겨울은 늘 설렜다.

통나무 집앞에서 눈을 밟고

썰매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평화로웠다.

밖에는 눈이 오고 장작타는 냄새는 따뜻했다.

그렇게 눈산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던 시절이었다.


이제 나는 찐겨울이 있는 한국에 산다.

사방이 그때의 눈산같아 신난다.

이 추위는 산에서만 느꼈던 그 설레임이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아마 우리 모두에게 그런 추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영롱하게 빛나는 오너먼트,

양말을 걸어두고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

동방박사와 아기 예수님이 있는 작은 구유,

그리고 그런 장면들이 그려진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던 따뜻한 시절의 기억들.


나는 12월이 생일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설렘이 더욱 내 몫처럼 느껴진다.

스노우글로브를 뒤집어 들었을 때 마법처럼 눈이 두 배로 반짝이며 흩날리는 순간처럼,

나는 이 특별한 시기가 두 배로 의미 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어느 아침,

잠이 덜 깬 무뚝뚝한 아들이 파자마 차림으로 거실로 나와,

크리스마스트리 라이트 스위치를 딸칵 하고 키면,

트리에서 번져온 따뜻한 불빛과 은빛 실로폰을 두드리는 맑은 소리가 집안을 채우면서,

나는 또 한 해의 크리스마스사랑이 시작된다.

작가의 이전글그리움과 새로움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