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할머니는 사랑을 몰랐을까

한 이름, 한 시대, 그리고 침묵으로 살다

by 루나

할머니,
저는 요즘 당신을 자주 생각합니다.
남쪽 끝에 위치한 '하의도'에서 낳고 자란 당신
그래서 이름이 <윤하도>
누구는 그 이름이 섬에서 유래된 멋진 이름이라고하지만,
저는 알지요.
그 시대에 얼마나 성의없이 지어진 이름인지를...
하도하도 지을게 없어 하도라고 지었다는것을요.

할머니,
당신은 어떻게 자랐나요.
누구보다 크게 자랐지만,
큰 키와 체격은 축복이 아니라 짐이 되었지요.
마음만은 늘 작게 움츠러들었을 당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고무신이 맞는게 없을정도로 키가 컸던 당신은
체격만큼 먹고싶은것도 많았을텐데
얼마나 슬프게 자랐을지...

할머니,
섬을 떠나던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친정집에 입 하나 덜기위해
얼굴도 마음도 모르는 남자에게 가는길은 어땠을까요.
얼마나 많은 바람과 눈물이 뒤섞였을까요
꽃구경 한 번, 영화 한 편, 친구와의 웃음 한순간도
사치처럼 여겨졌을 그 청춘.
당신의 빛나는 젊음을 삼켜버린 건
가난이었고, 시대였고, 그리고 억센 운명이었습니다.

할머니,
당신은 사랑을 아셨나요.
남편은 평생 당신을 종 취급했고
남편은 한상에 밥먹는걸 싫어했고
남편은 나란히 길을 걷는법이 없었고
그래도 섭섭하다 서운하다란 말은 생전 한적 없었던 당신.
그런 당신에게 느닷없이 제가 나타났지요.
마치 본인이 낳은양 정성껏 키우신 당신.
어쩌면 정말 당신이 낳았다고 착각하신건 아닐까요.

할머니,
당신은 행복은 알고 가셨나요.
오직 아들에게서 행복을 아셨겠죠.
당신을 닮아 잘 생기고 착한 아들
보기만해도 얼마나 흐뭇하셨을까요.
학교라고는 가본적없는 당신은 독학으로 글을 깨우치고 성경을 읽으며
매일밤 아들을 위해 기도했겠지요

할머니,
당신은 무엇이 가장 맛있었을까요.
당신을 위해 외식은 한적 있었나요.
맛있는것은 다 가족들앞에 두고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살아오셨을까요.
내 기억 속 저편에는 밥주걱 자국이 선명한 누룽지를 섞어 드시던 모습만 남아 있습니다.
남편이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재료를 사 들고 집에 들어왔고,
그 모든 음식을 묵묵히 해내시던 당신,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칭찬은 들어보셨을까요.

할머니,
당신께 여행이란 어떤 의미였을까요.
아들이 서울에 산다 하여 몇 번 오른 기차길,
그마저도 오직 아들을 향한 설렘과 기쁨만이 있었을 뿐,
풍경에 취하거나 마음을 흩뜨리는 사치는
허락하지 않으셨던 건 아닌지요.

할머니,
당신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하늘로 가실때마저도 당신의 종교에서 보내드리지못했지요.
당신이 평생 믿었던 기독교가 아닌
산 사람들의 편리함으로 개종해서 가신 당신
세례명 <마리아>
저는 당신을 천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천사 마리아...

천사 마리아 할머니,
당신이 많이 보고싶을때엔 어떻게 해야하나요.
어릴때엔 꿈에서 만나보고싶어 잠을 잤지만
지금은 제 영혼이 퇴색되어 꿈에 나타나지도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믿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제 곁에,
바람처럼, 빛처럼, 기도로 함께 계신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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