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밤의 시간

by 루나

작년부터 벼루고 벼루며 꼭 가보자했던 곳을

새해가 되고도 세달이 지나서야 마침내 가게되었다.

늘 그렇진않지만, 늦은 작심이 더 절실한듯하다.

나는 티켓을 끊어 놓고 뿌듯한 기분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리고... 역시, 만사는 생각으로할때와 직접 실행할때의 갭이 상당히 크다는것을 느꼈던 그곳이었다.


반 고흐 인사이드(Van Gogh Inside)라고, 벽, 바닥, 천장 가득 고흐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미디어아트 전시였다.

익숙한 음악과 낯익은 그림들의 조화는 그림에 지식이 없는 내게 뜻밖의 힐링타임을 선사했다.


고흐는 많은 그림이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하늘이 꼬불탕거리는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에서 나는 별밤지기 이문세를 떠올렸다.

(고흐 그림과 같은 제목의 이 우연에 괜히 의미를 두는 건 나뿐일까.)


미디어와의 소통이 너무나 신기했던 그때,

그 그림속에서 되살아났던 애정할수밖에 없었던 그 라디오프로인 별밤은 그림이 아니라 감정과 음악으로 먼저 내 안에 들어왔다.


내가 유독 사랑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도,

그 시절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통과해온 감정의 시간대였기 때문이다.


들국화, 부활처럼 주옥같은 가수들이 있었고, 그들의 노래는 늘 내 곁에서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을 대신 전해주었다.

그럼에도 서양 음악은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George Michael의 목소리가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오던 순간,

나는 가본적 없는 뉴욕의 화려함을 느꼈고,

Madonna의 매혹적인 음성은 번접할수없는 세련됨을 품고 있었다.

Hard to Say I’m Sorry는 말로 하지 못한 감정을 대신 울어주었고,

Billy Joel의 Piano Man을 들을 때면 마치 막 이별을 겪은 사람처럼 이유 없이 마음 한쪽이 오래 아파왔다.

그 노래들은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그 시절 내가 어떤 마음으로 자라고 있었는지를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나도 어쩌면 고흐의 그 그림처럼 꼬불탕거리는 하늘을 그때시절에 지내지않았을까...

내 사춘기 마음상태의 전면을 보여주는것같은 그림같았다.


별을 찾아 헤매던 죠슈아 트리의 늦은 밤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던 그때였다.

그것은 마치 우리 젊은 날의 불확실함 같았고

마구잡이로 별빛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그 시절이었다.

그 캄캄함은 어쩔땐 불안 속에서, 어쩔땐 고독 속에서.

어둠이 두려운 게 아니라, 어둠 덕분에 빛을 찾게 된다는 걸 그때는 모르고 있었다.


이제 나는 'Show Me The Money'를 통해 감성 힙합을 알게되었다.

Counting stars~ 밤하늘에 펄~ Better than your LV, your LV...

별이 빛나는 밤 앞에서 Be’O의 가사가 이렇게 찰떡일줄이야.

명품 가방 루이비통을 노래하지만, 가슴 뛰게 하는 순간이야말로 그 어떤 값비싼 물건보다 더 럭셔리하다는 걸 일깨워주는 가사였다.


나는 최고급 일제 Sony 워크맨을 갖지 못했지만,

금성(GoldStar) 워크맨으로 Air Supply 노래를 들으면 어디든 멀리 걸을수있었다.

그 시절의 음악은 소유가 아니라 감정이었고, 브랜드보다 기억이 오래 남았다.

고흐의 별빛 아래에서
나는 다시, 별밤 소녀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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