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기억 속의 커피

by 루나

20대 초반,

나는 커피 향을 처음 알아버렸다.


학교 근처 센추리 시티의 빌딩 숲에서

이른 아침 문을 여는 커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텅 빈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를 맞아주던 것은 커피 향이었다.


갓 볶아낸 커피와

갓 갈린 원두 냄새,

막 맞이한 새벽 공기와 어우러진 그 향.

그 시간은 유난히 따뜻했다.


항상 앞주머니에 몽블랑 펜을 두 개 꽂고 오던

죠지 클루니를 닮은 멋진 손님은

늘 더블샷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저 멀리서 그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면

나는 제빨리 포터필터에 원두를 탬핑해

머신에 장착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취향을 알아차리는 일이 즐거웠다.




세월이 흘러 나는 스타벅스를 알게 되었다.
한때는 여러 논란이 그 이름을 둘러싸고 지나갔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을 찾는다.

그곳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천국의 맛이었고,
나 역시 ‘얼죽아’ 대열에 끼어 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즌 한정 커피를 기다렸고,
초겨울 시애틀 여행 중 마셨던 Toffee Nut 라떼의 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내가 스타벅스에 끌렸던 이유는
꼭 커피 맛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공간 속에서 줄을 서 있는,
그 시절의 내가 좋았던 건 아닐까.




또 세월이 흘러
아들이 대학 기숙사로 떠난 뒤
집은 생각보다 조용해졌다.

갑자기 생긴 저녁의 빈 시간과
식탁 위에 남은 한 사람의 자리.

나는 마음을 붙들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성당 카페 봉사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커피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신부님이 시작하신 ‘이냐시오’ 카페는
단순한 바리스타 교육이 아니었다.
커피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삶과 믿음의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아들의 부재로 생긴 허전함을
나는 ‘커피’라는 매개체로 견디기로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꽤 행복했다.




하지만 나는 위가 약했다.

친정아빠도 위암으로 돌아가셨기에

나는 더 조심해야 했다.


양배추를 먹고, 마를 갈아 마시고,

마누카 꿀을 챙겨 먹으며

무언가를 더해보려 했다.


잠시 좋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더부룩해졌고,

소화제를 늘 달고 살았다.




작년 여름, 나는 커피를 끊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소화제를 찾지 않게 되었다.

좋아지기 위해 무언가를 더하는 것보다
멈추는 일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우리는 아픔에는 민감하지만
회복에는 둔하다.

커피를 끊고 나서야
나는 내 몸의 변화를 느꼈다.

예전에는 손님의 커피 취향을 먼저 알아차렸지만,
정작 나는 나를 가장 늦게 알아차렸다.



*90년대 감상으로 개사를 해보았다


안개빛~ 커피는~
흐트러진 내 마음을 감싸고
커피에 취해 비틀거리던 우 예~
위 아픈 나의 모습

이제는 싫어 우 예~

쓸쓸히 피어오르던
예뻤던 커피 향기
화려한 컵들 사이
거울에 비쳐오는 위 아픈 나의 모습

변해버린 생활 속에
나만의 커피, 커피, 커피
이제는 멀어져가고

sticker sticker
sticker sticker
작가의 이전글독립투사, 마트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