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이라는 이름으로

by 루나

그때 한국에는 동창 찾기 열풍이 일어났었다.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인터넷 서비스가 그것이었다. 집 컴퓨터를 켜고 MSN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던 그 시절은 이제 구한말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진다.

인터넷으로 동창을 찾고 옛 친구들과 다시 연결되어 한국이 들썩이고 있었지만, 나의 시간은 전혀 다른 곳에서 흐르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한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바로 임신 중이었다.


게시판에서는 “지금 만날까?”, “이따 퇴근 후 벙개하자.”, “이번 주말에 부산 갈까?” 이런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미국에 살면서 임산부인 나는 그 풍경이 늘 부러웠다.


미국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며 한국 동창 문화가 참 끈끈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나 역시 그 끈끈하다 못해 때로는 끈적거리는, 조금은 부적절한 상황들까지도 재미있는 구경거리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가십과 뒷말들이 난무하다가 어느새 흐지부지 사라지고 세월은 또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밴드’라는 어플이 등장하자 동창들은 다시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아이러브스쿨에서 시작된 동창 모임은 어느새 밴드로 옮겨갔고, 그렇게 다시 모인 동창들은 한국의 수많은 음식점과 술집들의 매상에 이바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곳의 사장님들도 또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우정을 응원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러브스쿨 시절 뱃속에 있던 그 아이는 어느덧 훌쩍 자랐고, 이제는 PC가 아닌 휴대폰으로 어디서나 자유롭게 밴드 어플을 켜며 한국 동창들과 소통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가 자라며 되찾은 자유시간 위에, 휴대폰이 주는 또 다른 자유까지 더해진 시대였다.


그러는 와중 한국에 잠깐씩 여행을 올 때마다 동창들을 만나는 일은 늘 반갑고 신기한 일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만남에는 늘 설렘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내가 한국에 살게 되었다. 막상 한국에 와 보니 동창들과 생각만큼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았다는 이유 때문인지, 친구들 사이에 이미 만들어진 소통의 흐름 속에 내가 완전히 섞이지 못한다는 선입견도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다.


오히려 계절마다 한국을 여행 오는 미국 친구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되었고, 미국이 아닌 이곳, 그들에게는 낯선 한국에서의 만남은 우리의 거리를 더 가까이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어쩌면 멀리 떨어져 지내던 시간 덕분에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더 천천히, 더 오래 나누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행복의 문턱이 낮은 나는 그런 시간을 온전히 즐겼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사람 사이의 거리는 꼭 물리적인 거리로만 정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같은 도시에서 살아도 멀어질 수 있고, 바다 건너에 있어도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어릴 때 친구들을 예전처럼 계속 만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누구는 결혼 안하고, 누구는 애 안낳고, 누구는 갔다 오고, 누구는 망하고...그렇게 각자의 삶 카테고리가 조금씩 갈라지게 된다.


그래도 동창들은 같은 교실에서 같은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화장실도 팔짱 끼고 함께 가던 얼굴을 알고, 서로의 어설픈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사이니까.


그래서일까. 아이러브스쿨에서 시작된 그 이름들은 지금도 내 삶의 한쪽에 남아 있다. 동창이라는 이름으로.

작가의 이전글결론은 체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