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성당 유목민의 서울 정착기)
데레사 언니.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새벽 6시 미사를 한번 가보겠다고 동트기 전에 일어나 앉았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성당 사무실 문이 안 열렸을 것 같아 성당 볼일을 못 보겠네… 싶어 다시 누웠다. 그런데 딱 그때 반갑게 언니에게 톡이 왔네.
나, 언니가 몇 년 연속 선물로 준 캘린더, 그보다 더 예쁜 건 끝내 못 찾았다. 그래서 교보문고에서 아주 티피컬한 꽃그림 캘린더를 사고 말았어. 그런데 벌써 그것도 세 장째 넘기고 있네. 시간 이거 완전 사기 아냐?
언니.
3월 초로 딱 3년이 된 한국 생활 동안 나는 성당 소속도 없이 산골성당이랑 서울성당을 왔다 갔다 하며 지냈어. 떠돌아다니는 유목민마냥 교무금이나 봉사는 물론이고, 여태 성당 사람 한 명도 못 사귀고 있었네. 늘 이방인처럼 미사만 보고 조용히 빠져나오는 신세야.
이제는 거소증에 등록된 주소가 이쪽이니 교적도 서울성당으로 입적해야겠다 마음먹고, 미국 성당에서 어렵게 전출 교적을 받아 서울성당에 전해 줬는데…
세례 증명이 행방불명이라 전입이 불가하다는 거야. 한국은 각 성당 전산 시스템이 다 연결되어 있어 동사무소처럼 어디를 가든 서류가 바로바로 나오는 첨단 시스템 보유국이잖아. 견진 증명은 언제 어느 성당에서 받았는지 딱 나오는데 세례 부분만 텅 비어있는거지.
우리 엄마가 나를 낳고 몸도 채 풀기 전에 기껏 받은 유아세례인데, 이제 와서 그걸 증명할 길이 없다니… 나 너무 오래전에 태어났나?
이제 여든 넘은 엄마는 어느 성당이었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 하시고, 그나마 증인이었던 분은 이미 돌아가셨고… 이러다 내 세례가 역사 속 미스터리로 남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날따라 서울성당 고상에 계신 예수님은 다리는 짧고 허리는 길어 비율이 어딘가 애매하니 못마땅하고, 미사 중 뒷자리 아주머니가 유난히 떨리는 큰 목소리로 부르는 성가는 또 왜 그렇게 귀에 거슬리던지…
거룩한 미사 시간에 나는 결국 흑화되고 말았다. 성경에는 분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 했는데, 이곳은 욕과 화가 흐르는 가난한 땅 아니냐고.
언니.
그 환하던 햇볕의 캘리포니아. 유난히 예쁜 카페가 딸려 있던 그 특별한 성당에서 아침 미사 후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웃고 떠들던 우리들만의 시간들. 서로가 든든한 가지처럼, 세상에 우리밖에 없는 것마냥 그 시간을 마음껏 누렸던 그때가 그립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사람들이 우리를 꽤 부러워했을 것 같아.
미국에서는 그렇게 까다롭지 않게 가고 싶은 성당에 가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만났는데… 한국에서도 그런 ‘부러운 자리’를 다시 한번 누리게 될 줄 알았는데… 그런 인연을 또 주실 거라 은근히 기대했는데… 막상 여기에서는 성당 소속감 하나 갖는 것도 쉽지 않네.
이제는 본당 신부님께 쪼글거리고 남부끄러운 첫영성체 사진이라도 들이대며 진짜 신자라는 걸 증명해야 할 판이야.
사제가 권위만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참 목자의 모습을 가진 분이라면 내 눈빛을 보고 알아주시겠지. 점점 그런 분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시대지만 어쩌면 제도 교회가 앞으로 더 힘들어질 이유도 바로 그런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박해 시대도 아닌데 신앙을 증명해야 하다니… 이러다 순교라도 해야 하나. 요즘처럼 AI가 난무하는 세상에 내 신앙의 증명이 겨우 빛바랜 사진 한 장이라니 말이야. 참으로 참신한 아날로그 방식 아니냐고.
구구절절 내 이야기만 늘어놓았네.
사랑하는 데레사 언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Goodbye 말고 See you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