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 사다리로 지붕에 올리기.

by 이 범수


나의 아버지께서는 한학을 공부하셨던 학자이다. 학문만 해서는 가정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아 항상 가난을 당연시하면서 자라왔다. 아버지께서는 몇 가지 교훈을 주셨는데 지금까지도 내가 살아가는데 기본으로 삼고 있다. 그 덕분인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황소, 사다리로 지붕에 올리기.

아버지가 알려주신 교훈 중 하나다. 옛말에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농경 시대에는 노동력이 가장 큰 자산이던 시절이라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10살만 되면 지게 지고 농사일을 거들기 시작한다, 사람이라는 자산에 10년 남짓까지 먹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투자만 이루어지면 그 이후는 남는 장사가 된다. 10살 정도만 되면 지게 지고 일을 하던가 최소한 농사일에 심부름이라도 하면 본인이 먹고 쓰는 것보다 많은 결과를 만들게 될 것이다. 머리로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것보다 젊고 노동력을 가진 자식이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는 구조를 가진 것이 우리의 농경 사회의 모습이다.

가족 구성원이 비슷한 두 가정이 있다. 두 집 모두 한창 일할 때인 20대 30대의 아들이 네 명이나 있는 대가족이다. 즉, 노동력은 비슷하다. 그런데 두 집 가정 형편은 비슷하지 않다. 한 집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형편이고 다른 한 집은 항상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살아간다. 어느 날 온 동네 어른들이 참여하여 난상 토론이 벌어졌다. 지난해 심은 논농사는 물론이고 콩 농사도 잘못되어 큰일이라며 요즈음 말로 100분 토론을 능가하는 토론이 벌어졌다. 그러던 중 토론의 주제가 두 집의 가정 경제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토론을 한참 듣고 있던 잘사는 집 어른께서 우리 집이 왜 잘사는지 보여줄게 하면서 모두 따라오라고 했다. 사랑방에서 난상 토론을 벌이던 사람들 모두 따라나섰다. 어르신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큰아들을 불렀다.

“큰애야, 저기 사다리 가져와서 지붕에 세워라.”

아들은 아무 말 없이 창고에서 사다리를 가져다가 처마 끝에 세웠다.

아버지 사다리 놓았습니다.

“그럼, 마구간에서 소 몰고 와서 사다리를 통해 지붕 위에 몰아 올리거라.”

아들은 마구간에서 소를 몰고 나와 사다리 앞에 섰다.

“아버지 소가 사다리를 못 올라갑니다.”

“그래 그러면 소를 다시 마구간으로 다시 데려다 놓아라.”

아주 평화롭고 조용하게 소가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상황은 짧은 시간에 깔끔하게 끝이 났다. 이번에는 가난하게 사는 집으로 갔다.

가난한 집 어르신도 똑같이 말씀하셨다.

“큰애야, 창고에서 사다리 가져와 처마 끝에 세우거라.”

큰아들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다리를 가지러 갔다. 안주인은 지붕도 모두 이었고 특별히 할 일도 없는데 왜 사다리를 가지고 오라고 하냐며 투덜거렸다. 그때 사다리가 처마 끝에 놓였다.

“그럼, 마구간의 소를 몰고 와서 사다리를 통해 지붕 위로 올리거라”

그런데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온 가족들이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난리가 났다.

“영감이 노망했으면 곱게 노망을 해야지. 어떻게 소가 사다리로 지붕 위에 올라가요!

안주인은 물론 아들 며느리 온 가족이 나서서 집안의 가장을 비난하고 난리를 쳤다. 소는 마구간에서 몰고 나오지도 않았다.

두 집의 소는 모두 지붕 위에 올라가지 못했다. 그러나 잘사는 집안은 큰 어른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며 말이 안 되는 일이라도 원활한 소통을 통하여 서로가 이해하고 그에 따른 합당한 결론을 내었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은 가장인 어른을 노망든 사람으로 몰고 서로 간의 갈등만 증폭시켰다. 결국 아무 결론 없이 서로의 가슴에 상처만 남기고 끝난 것이다.

이는 나의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많은 유산 중의 하나이다. 즉, 화목(和睦)이라는 유산을 나에게 물려주신 것이다. 아버지의 교훈 덕분에 나는 화목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우리 5남매는 항상 서로를 위하고 힘들 때는 같이 걱정하고, 즐거울 때는 같이 기뻐하며 지내려고 노력을 한다. 특히 이런 모습을 나의 자녀들과 조카들에게 자주 보여주고 있다. 요즘은 자녀가 하나, 둘밖에 없는 가정이 많아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배우기 어렵다. 그래서 사촌들끼리 부대끼면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습득하고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온 가족 전체가 모이는 일을 자주 만든다.

우리의 전통인 유교의 문화도 이러한 바탕에서 발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고유 풍습 또한 사회가 변모하면서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우리의 문화를 현실에 맞게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그중의 하나가 제사를 모시는 일이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전통인 유교적인 풍습에 따르면 제사를 모시는 일은 조상이 살아계시던 마지막 날에 온갖 맛있는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조상께서 돌아가신 날 새벽 첫닭이 울기 전에 예를 갖추어 제사를 모시는 것이다. 그리고 온 식구가 모여 앉아 복을 부른다는 제사 음식을 음복하고 아침 해가 뜨면 동네 이웃 친지들과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정을 쌓아가는 것이 우리의 전통 유교 풍습의 의미라고 생각했다.

조모님과 조부님의 제사는 아버지를 따라 새벽 1시에 일어나 무거운 눈꺼풀을 양손으로 비비며 비몽사몽간에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적인 풍습대로 모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지의 제사 역시 전통적인 풍습에 따라 모셨는데 뭔가 이상했다. 내가 느낀 전통적인 유교 풍습의 목적은 돌아가신 분을 위한다기보다는 제사를 계기로 살아있는 일가친지들이 화목하게 교류하면서 돌아가신 분의 살아생전의 훌륭한 가르침을 다시 생각하고 교훈으로 이어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계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0일 탈상을 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 탈상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솔직히 나는 3년은 자신 없었다, 그렇지만 삼오날 탈상은 어너님이 너무 아쉬워하셧다. 그래서 어머니와 100일만 모시자고 했다. 즉, 100일 동안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처럼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올리고 아버지 영정에 절을 하는 의식이다. 그런데 나의 마음속에는 살아계신 어머니가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매일 상식(上食)을 올리고 영정에 예를 갖추면서도 아버지 생각은 없었다. 살아계신 어머님께서 편한하게 생활하시도록 최선을 다해야지 하는 다짐을 매일 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 유교의 전통 풍습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문화라는 것을.

아버지의 제사를 전통대로 돌아가신 날 모시면 토요일이 아니고는 형제 및 가까운 친지들은 참석하지 못한다. 물론 과거 농경 사회에 씨족 마을을 형성하여 살아가던 시절은 주중이건 주말이건 상관이 없지만, 이제는 사회가 변했다, 가까운 가족들이 한 도시에 사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직장과 생업을 따라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으니 어느 해는 나와 길상이만 제사를 모시는 경우도 발생했다. 그래서 나는 제사의 문화를 이 시대의 생활 환경에 맞게 변화하자고 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던 마지막 토요일을 아버지의 제삿날로 변경한 것이다.

매년 초가 되면 올해의 아버지 제삿날을 가족 카페에 공지한다, 이렇게 변경하고는 아버지, 어머니 슬하의 자손들은 참석률이 매년 90%에 육박하고 이날은 우리 가족 모두의 축젯날이다. 토요일 밤에 제사를 모시는 관계로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미국에 있는 아들 녀석은 Zoom을 통하여 잠시나마 가족과 자리를 함께한다. 다음 주 토요일이 올해 아버지 제삿날이다. 지난 7월에 이사하고 첫 제사다. 비록 아파트에 살지만, 올해는 제사 음식을 옆집과 윗집 아랫집과 나누어 먹는 우리의 전통도 다시 복원해볼까 한다.

길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이것은 비록 가정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회사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면 예스맨이 되어야 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잘사는 집의 장남이 예스맨인가. 소가 사다리를 못 올라간다고 분명히 이야기했기에 예스(Yes)맨은 아니다. 그는 노(No)를 상대방이 공감할 수 있도록 팩트에 기반하여 이야기했고 그것을 누구나 이해하게끔 보여주었고 이에 아버지도 공감한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집의 장남은 당연하게 소가 사다리를 못 올라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다른 사람도 본인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소가 사다리를 못 올라간다고 이야기하였다. 우리는 많은 일을 하면서 내가 하는 생각과 상대방이 하는 생각이 같다는 가정에서 대화를 시작한다. 정말 순간의 차이이고 종이 한 장의 차이다. 심호흡 한 번 하고 대화를 시작하자. 팩트가 아닌 가정의 논쟁이 되면 소가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나 없냐의 문제가 아니고 상대방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한 대화에 더 많은 열정을 쏟는 잘못을 종종 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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