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새벽 기도

by 이 범수

어머니의 새벽 기도

나는 항상 새벽잠을 어머니의 새벽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 깨어났다. 어머니는 1년 365일 새벽 차가운 물에 목욕하고 기도를 드렸다. 대구에서 아파트로 이사 간 다음 날이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겨울날이었는데, 새벽 목욕을 할 때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을 맞지 않아서 좋다며 즐거워하시던 모습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이러한 어머님만의 의식은 하반신이 불편해서 혼자 거동을 하지 못하는 91살이 될 때까지 매일 계속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셨다. ‘범수, 홍수 형제간에 화목하게 지내고, 남들에게 나쁜 짓 하지 말고 손가락질받을 일 하지 말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하는 일이 술술 잘 풀리기를…’ 이렇게 매일 새벽이면 신에게, 조상에게 빌었다. 그러면 신의 힘으로 두 아들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으신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신이 어머니의 기도를 들어준 것이 아니고 매일 종교의식처럼 우리 집에서만 일어나는 어머니의 새벽 머리맡 교육이었다.

어머님의 바람과는 한참 멀지만 그래도 그 말씀을 되새기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녀들에게도 간혹 비록 꼰대소리를 듣지만 할머니가 이렇게 기도하셨다고 간접 교육도 한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 하나만 반듯하게 성장시켜 놓으면 장남이 노후를 책임지는 것으로 믿고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하여 헌신하셨다. 최고의 노후 대책이 자식에 대한 투자인 셈이다. 그러나 세상이 너무나 급속하게 변했다. 유교 사상이 중심이 된 우리들의 생각과 풍습은 경제 발전과 함께 너무나 빠르게 변화되었다. 한 세대 동안에 이렇게 갑자기 풍습이 변하는 사례가 또 있을까. 정말 의문이다.

내가 겪은 것을 예로 들면, 아버지가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1주일쯤 지나서 주치의 선생님께서 임종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작은아버지께 연락했다. 황급히 오신 작은아버지는 빨리 집으로 가자고 했다. 병원에서 돌아가시면 객사(客死)이니 형님을 객사시킬 수는 없다고. 유교적인 논리였다.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1주일쯤 후에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하셨고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당연히 병원에서 임종을 하셔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집에서 임종을 맞았고 장례는 병원에서 치렀다. 그런데 집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병원 장례식장으로 운구하는 일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정말 큰 문제는 최고의 노후 대책이 자식에게 투자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온 어르신들이다. 평생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투자했는데 핵가족화가 되면서 노후의 생활 안정이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 변하면서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옛날 농경 사회는 대부분의 가족들이 한 마을 근거리에 거주하였으며 자녀의 수도 많아서 주된 생활은 장남과 함께하지만 여러 형제가 공동으로 돌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핵가족화 산업화로 가족들이 흩어져 살게 되면서 자식에게 투자한 것 이외의 노후 준비가 되지 않은 세대로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다. 반대로 부모를 직접 돌보는 자녀도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 많은 노인이 거동이 불편해지면 스스로 요양보호소를 찾기도 한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문화와 관습이 지극히 짧은 시간에 새로운 문화로 변화해 정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정정하게 90의 나이에도 혼자 버스를 타고 대구에서 함양 고향 집까지 다녀오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셨다. 대, 소변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이런 것인가. 시력도 백내장으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주말 부부이고 한 달에 3주를 해외 출장인 나로 인하여 아내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요양 보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혼자 어머니를 보살폈다. 다행히 대구에 있는 누님과 동생 그리고 포항에 계신 누님이 힘들 때 잠깐씩 돌아가며 모셔주어 도움이 되었다.

주말 오후, 대구로 내려가 아침을 먹고 누님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오는 길이었다.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는 차가 출발하자 어디로 가는지 물으신다. 집으로 갑니다. 5분쯤 지나서 다시 물으신다. 오데로 가노? 집으로 갑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5분쯤 지나 다시 묻는다, 오데로 가노? 바른대로 이야기해라. 어디로 가도, 요양원 가도 괜찮다. 집에 가니 걱정하지 말고 가만히 계십시오. 그런데 우리 집이 왜 이렇게 머노. 바른대로 이야기해라. 오데로 가도 괜찮다. 집에 갑니다. 조금만 있으면 집에 도착합니다. 길상이, 남경이도 있을 것입니다. 비산동에서 태전동까지 불과 30분도 안 걸리는 시간 동안 오데 가노, 집에 갑니다. 이 대화를 수십 번 주고받았다. 그 사이 집에 도착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 어머님과 친하지 않은 별이가 짖는다. 짖는 소리를 듣고는 혼잣말로 속삭인다. ‘강아지가 짖는 것을 보니 우리 집이 맞는 모양이네’ 그리고 길상이, 남경이가 와서 인사를 하자 안심이 되었는지 피곤하다며 곧바로 잠드셨다.

10여 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가끔, 오데 가노? 집에 갑니다. 이 대화가 아련하다. 앞도 보이지 않으니 불안하고 초조한 30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 자식을 위해 요양원에 가도 괜찮다고 표현했던 그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어머니는 거의 6년 동안 병상 침대 생활을 하셨고 그 6년 동안에 나는 5년을 주말 부부, 월말 부부로 살았다. 2015년 11월 온 가족이 동탄으로 이사를 했는데 집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다행이었다. 사실 요양 보호사의 도움을 받는 시간은 하루 3시간이다. 나머지 21시간 중에 발생하는 어머니의 생리적인 문제를 집사람 혼자서 처리해야 했다. 요양 보호사가 있는 동안에 그 일을 처리하는 경우는 복권 당첨만큼이나 어렵다. 동탄으로 이사를 오고 나니 가장 좋은 것은 어머니의 생리적인 현상이 예고되면 집사람이 내게 전화를 한다. 그러면 나는 회사에서 조퇴하고 달려가서 뒤처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가장 심각해지는 것은 노인 인구를 돌보는 일일 것이다. 어머니는 집에서 눈을 감으셨지만, 주위의 여러 가까운 분들이 요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사례도 많이 보았다. 어느 것이 노령화 사회를 위한 가장 합리적인 대책이고 문화일까.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능하면 자식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정부에서도 노인을 돌보는 정책을 다양하게 개발하면서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거동할 수 없는 어머니를 6년간 모시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은 가능하면 자식들이 돌보는 방법을 만들고 이에 대한 뒷받침을 정부가 도와주는 것이 노인의 복지 및 국가의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노인 복지를 산업화하는 것보다 좋은 정책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벌기만 하고 써지는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