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모험의 시작
오슬로에서의 평온했던 이틀을 뒤로하고, 드디어 노르웨이의 진짜 모습을 만나러 떠나는 날이 왔다. 지난 며칠간은 도보와 대중교통만으로도 충분했던 도시 여행이었다. 주차장을 찾는 번거로움도, 주차비 걱정도 없이 오직 새로운 문화와 유적지를 이해하고 감동받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호텔에서 천천히 짐을 챙기고 오슬로 중앙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설렘과 긴장이 뒤섞여 있었다. 4시간의 기차 여행을 거쳐 돔바스(Dombås)에 도착한 뒤,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온달스네스(Åndalsnes)까지 가서 렌터카를 인수해야 하는 복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온달스네스에 대한 정보는 파편적으로만 알고 있었고, 모든 이야기가 일치하지도 않았다. 현지에 도착해서 상황을 보고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렌터카와 호텔 모두 2일만 예약해둔 상태였다. 상황을 파악한 후 일정을 연장할 계획이었다.
노르웨이의 숨겨진 보석, 미외사 호수
기차에 몸을 맡기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과 약간의 긴장감을 품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차가 두 시간쯤 달렸을 때, 창밖으로 펼쳐진 광경에 숨이 멎을 뻔했다. 거대한 호수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호숫가 언덕 위로는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아름다운 집들이 점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푸른 잔디밭 위에는 캠핑장의 캠핑카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 떼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호수의 길이가 도대체 얼마나 될까? 끝이 보이지 않았다. 호수인지 강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대했다. 기차는 이 호수를 따라 한참을 달렸다. 멀리 언덕에는 이미 추수를 마친 듯 누런 들판이 펼쳐져 있어, 마치 우리나라의 늦가을 풍경과 여름 풍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왼쪽의 호수를 따라 30분 이상을 달린 것 같았다.
다음 정거장에서 한 가족이 기차에 올라탔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이것이 강인지 호수인지 물어보았다. 호수라고 했다. 도대체 몇 킬로미터나 되는지 묻자, 정확한 길이는 모르지만 노르웨이에서 가장 긴 호수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구글 지도로 확인해보니 미외사(Mjøsa) 호수였다. 이 호수는 노르웨이 최대의 호수로, 길이가 117킬로미터에 달하며, 빙하기 시대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단다. 약 1만 년 전 빙하가 녹으면서 형성된 이 거대한 호수는 노르웨이인들의 삶과 문화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한다.
호수의 나라, 노르웨이
한참 동안 호수 옆을 달리고 나서 이제 기차는 울창한 숲길을 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행 방향 오른쪽에 또 다른 호수가 나타났다. 정말 노르웨이는 호수의 나라였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마치 자연이 그려낸 거대한 수채화 같았다. 짙푸른 침엽수림 사이로 반짝이는 호수면이 햇빛을 받아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었고, 간혹 보이는 목조 주택들은 빨간 지붕을 얹고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노르웨이의 호수들은 단순한 자연 경관이 아니다. 이들은 바이킹 시대부터 노르웨이인들의 교통로이자 생활 터전이었다고 한다. 험준한 산악지대가 대부분인 노르웨이에서 호수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호수에서 페리가 운행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관광 상품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실질적인 교통수단이기도 하단다.
예상치 못한 시련의 시작
우리는 오후 2시 2분에 돔바스에 도착해서 2시 22분에 온달스네스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2시가 가까워지자 다음 정거장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내가 내려야 할 역인지 확인하니, 세 개 역을 더 지나서 내가 내려야 할 역이라고 했다. 그런데 옴바스 도착 시간이 2시 38분이라고 했다. 갑자기 온몸에 긴장감이 흘렀다. 온달스네스 가는 버스가 2시 22분인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와 버스가 연계된 승차권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이런 시스템은 정말 우리나라도 벤치마킹할 만했다.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편리한 것이 없었다.
역에 도착하니 정말로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노르웨이의 대중교통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한층 높아지는 순간이었다. 버스를 타고 온달스네스로 향하는 길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엄청나게 높은 산 꼭대기에는 만년설이 하얗게 쌓여 있었고, 때로는 몇 백 미터는 될 법한 폭포가 바위 절벽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온달스네스, 롬스달의 관문
온달스네스(Åndalsnes)는 인구 2천 명 남짓한 작은 마을이지만, 노르웨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 중 하나인 롬스달(Romsdal) 계곡의 관문이라고 한다. 이곳은 1922년 라우마 철도(Rauma Line)가 개통되면서 본격적인 관광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라우마 철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도 중 하나로 꼽히며, 험준한 산악지대를 뚫고 지나가는 공학의 걸작품이라고 한다.
온달스네스 주변에는 해발 1,550미터의 롬스달스호른(Romsdalshorn)을 비롯해 수많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특히 트롤스티겐(Trollstigen), 즉 '트롤의 길'로 불리는 구불구불한 산악도로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명소다. 이 도로는 1936년에 완공되었는데,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공사를 8년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11번의 헤어핀 커브를 가진 험준한 산길이다.
예상보다 늦은 오후 4시 30분경에 온달스네스역에 도착했다. 이제 렌터카를 찾으러 가야 했다. 기차표를 예매하기 전에 확인했을 때는 온달스네스에서 렌터카 인수 장소가 역과 공항 두 곳이 있었다. 그래서 기차표를 먼저 예매하고 렌터카를 예약하는데, 인수 장소가 공항밖에 뜨지 않았다. 역에서 직선거리로 25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마침 공항 가는 버스가 있어서 탔다. 그런데 호수를 빙 돌아 페리를 타고 공항 가는길은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했다.
상상하지 못한 경험, 페리 여행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버스는 호수를 한참 돌아 페리를 타고 호수를 건넜다. 정말 상상하지 못한 경험이었다. 작은 페리에 버스가 통째로 올라가는 것을 보는 것도 신기했지만, 페리에서 바라보는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들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사이로 깊고 푸른 물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노르웨이의 페리 시스템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선 문화적 유산이다. 복잡한 해안선과 수많은 피오르드로 이루어진 노르웨이에서 페리는 수백 년간 사람들을 연결해온 생명줄이었다. 오늘날에도 100여 개가 넘는 페리 항로가 운행되고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조밀한 페리 네트워크 중 하나라고 한다.
시련과 인정
렌터카 인수를 5시에 약속했는데, 5시 20분에 렌터카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6시쯤 도착한다고 했고, 5시 40분에 도착했는데 벌써 담당자가 퇴근한 상태였다. 시골의 조그만 공항이라 아무도 없었다. 연락 전화번호가 있어서 전화했지만 노르웨이어로만 녹음된 안내가 반복될 뿐이었다.
'아, 또 다시 시련이 시작되는구나.' 이럴 것 같았으면 오슬로에서 렌터카를 인수해서 오는 것이 내가 조금 육체적으로 피곤하지만, 시간상 더 빨랐을 것 같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 황당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어떤 중년 부인이 렌터카 키를 반납하러 왔다.
사정을 설명하고 전화를 부탁했더니, 그 부인이 흔쾌히 도와주었다. 노르웨이어로 담당자와 통화해 준 덕분에 7시까지 나오겠다는 약속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순간에 만나는 타인의 친절함은 여행의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도우려는 마음은 국경을 초월한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
차를 받아서 호텔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또 힘든 여정이 시작되었다. 아직 2주가 넘게 남아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야말로 여행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까.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단순한 이동에 불과할 것이다.
오늘 하루 동안 노르웨이의 거대한 호수와 험준한 산들,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났다. 미외사 호수의 잔잔한 물결부터 온달스네스 주변의 장엄한 봉우리들까지,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낯선 땅에서 만난 친절한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여행이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노르웨이 탐험이 시작된다. 렌터카와 함께라면 더 깊숙한 곳까지, 더 자유롭게 이 아름다운 땅을 누빌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오늘은 예상보다 힘들었지만, 이런 경험들이 쌓여 더욱 값진 여행이 되리라는 확신이 든다. 노르웨이의 하루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