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23일차 - 오슬로에서 만난 역사와 평화

by 이 범수

아케르스후스 요새에서 만난 역사의 흔적

오늘 아침, 오슬로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아케르스후스 요새(Akershus Fortress)로 향했다. 1299년 하콘 5세 왕이 건설한 이 중세 요새는 7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르웨이의 관문을 지켜온 산증인이었다. 요새 안에 자리한 노르웨이 저항박물관(Norway's Resistance Museum)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점령기의 암울한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 요새의 성벽을 따라 걷다 보니, 항구를 향해 늘어선 고색창연한 대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포의 상부에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었다. 전쟁의 도구인 대포에 이토록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을 새겨 넣은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생과 사를 가르는 냉혹한 무기에 인간적인 온기를 불어넣으려 했던 것일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지나가던 노르웨이 관광객에게 물어보니, 그 여인상은 덴마크 여왕의 초상이라고 했다. 1380년부터 1814년까지 무려 434년간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던 노르웨이의 복잡한 역사가 그 작은 조각상 하나에 응축되어 있는 것이었다. 지배자에 대한 예의였을 수도 있고, 혹은 평화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벨 평화센터에서 만난 인류의 희망

오후에는 노벨 평화센터(Nobel Peace Center)를 방문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알프레드 노벨의 생애를 소개하는 전시가 펼쳐져 있었다. 발명자로도 유명한 그의 아버지 임마누엘 노벨은 뛰어난 발명가이자 사업가였지만, 그만큼 위험을 무릅쓰는 도전가이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노벨 가문의 경제적 기복이 심했고, 가정사 또한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았다.

알프레드 노벨 자신도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었다. 폭약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죽음의 상인'이라는 오명을 듣게 되자, 자신의 전 재산을 인류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헌납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895년 작성된 그의 유언장이 오늘날 노벨상의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전시실을 둘러보며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넬슨 만델라, 마더 테레사, 달라이 라마, 김대중 대통령 등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특히 히로시마 원폭에 대한 전시는 상당한 공간을 할애하여 매우 상세하게 다루고 있었다. 핵무기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동시에 일깨워주는 의미 있는 전시였다. 관람하고 나오는 출구에 평화에 대한 각자의 바람을 기록하는 메모지가 있어서 나도 나의 간절한 바람을 적어두고 왔다.

항구의 여유로운 점심시간

평화센터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항구 옆으로 다양한 푸드트럭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시아 국수를 파는 트럭이 눈에 띄어 오늘의 점심으로 정했다. 간단하지만 정성스럽게 만든 국수 한 그릇이 여행의 피로를 달래주었다.

점심을 먹고 항구 옆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등 뒤로 내리쬐는 따가운 햇살과 앞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닷바람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를 연상시키는 기분 좋은 온도였다. 항구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평화롭게 정박해 있었고, 갈매기들이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살아있는 역사, 노르웨이 민속박물관

오후에는 비그되이 반도에 위치한 노르웨이 민속박물관(Norsk Folkemuseum)을 찾았다. 1894년에 개관한 이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과거 노르웨이 사람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재현해 보이려 노력하고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박물관 곳곳에서는 전통 복장을 입은 직원들이 옛날 방식 그대로 각종 수공예품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직원이 칼로 나무를 정성스럽게 깎고 있기에 무엇을 만드는지 물어보니, 계란 후라이를 뒤집는 주걱을 수작업으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옛날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방식을 그대로 재현해 보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이런 체험형 전시 덕분에 방문객들은 박물관의 유물들이 단순한 전시품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사용되었던 생활용품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스타브 교회의 경이로운 목조 건축

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골 스타브 교회(Gol Stave Church)였다. 1200년경에 건축되어 1885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된 이 교회는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교회와도 완전히 다른 독특한 모습이었다.

스타브 교회는 노르웨이 특유의 목조 교회 양식으로, 중세 시대 바이킹의 조선 기술과 기독교 건축 양식이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물이라고 한다. 교회 전체가 나무로만 건축되었는데,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나무의 짜임새만으로 700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낸 것이 놀라웠다.

무엇보다 나무에 새겨진 조각들의 정교함과 섬세함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용과 각종 환상의 동물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바이킹 양식의 조각과 기독교의 상징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어두컴컴한 교회 내부에 들어서니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비겔란 조각공원의 인간 찬가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비겔란 조각공원(Vigeland Sculpture Park)이었다. 구스타프 비겔란(Gustav Vigeland, 1869-1943)이 평생에 걸쳐 만든 212점의 조각 작품들이 80헥타르의 넓은 공간에 전시되어 있는 이곳은 한 명의 작가가 만든 조각공원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모든 조각상이 나체 상태라는 점이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양한 연령대의 인간군상들이 희로애락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서 있었다. 어떤 조각상은 기쁨에 겨워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고 있었고, 어떤 조각상은 절망에 빠져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공원 중앙에 우뚝 서 있는 17미터 높이의 모노리트(거대한 돌기둥)였다. 121명의 나체 인간상이 서로 얽혀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비겔란이 14년에 걸쳐 완성한 역작이라고 했다. 인생의 희로애락, 인간의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이 돌 하나하나에 스며있는 듯했다.

각 조각상마다 담긴 의미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작가가 평생에 걸쳐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 결과물들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공원의 잔디는 융단처럼 잘 관리되어 있었고, 퇴근길에 조깅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북유럽 특유의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대중교통으로 느끼는 오슬로의 일상

오늘은 하루 종일 오슬로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도시를 누볐다. 일일패스를 구입해두니 지하철, 버스, 트램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어 매우 편리했다. 구글 지도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이용할 교통편과 가장 가까운 정류장까지 상세하게 안내해주어 길 찾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어느 방향으로 가는 교통편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각 정류장마다 고유 번호가 있어 방향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오슬로의 시스템은 초행자에게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무제한 패스 덕분에 한 정거장 가보고 방향이 맞지 않으면 내려서 반대편에서 다시 타면 되니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렌터카 없이 여행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주차 걱정도, 길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현지인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그들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무소유의 진리를 이곳에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았다. 때로는 소유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자유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오슬로에서의 3일째 날이 저물어간다. 오늘 하루 만난 역사와 예술, 그리고 평화에 대한 메시지들이 마음속 깊이 새겨진다.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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