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22일차 - 오슬로의 첫 인상

by 이 범수

새로운 여행지를 향한 준비

이른 아침, 오슬로의 공기는 상쾌했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앞에 위치한 오슬로 중앙역이 눈에 들어왔다. 노르웨이에서의 첫 번째 임무는 13일 온달스네스행 기차표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매표소 직원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고, 우리는 노르웨이 여행의 핵심인 대중교통 이용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나갔다.

친구가 미리 조언해 준 대로, 노르웨이는 산악 지형이 많아 운전보다는 기차와 버스를 활용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관광안내소에서 오슬로 대중교통 종일권을 구입하며, 직원에게 온달스네스에서 셰라그볼튼까지의 여행 경로에 대해 문의했다. 완벽한 답변은 얻지 못했지만, 플롬, 송달, 베르겐을 거점으로 렌터카와 대중교통을 적절히 조합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잡았다. 여행이란 완벽한 계획보다는 그 순간의 유연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많이 배우고 있다.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 - 걸어 올라가는 지붕

시내 중심가에 숙소를 잡은 덕분에 오슬로의 주요 명소들을 도보로 둘러볼 수 있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였다. 2008년에 개관한 이 현대적인 건물은 노르웨이 건축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고 한다. 특별한 점은 오페라 하우스 내부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지붕 위를 직접 걸어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경사진 대리석 바닥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니, 오슬로 피오르드와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항구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오슬로의 현재와 미래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졌다. 이곳에서 바라본 오슬로는 자연과 도시가 완벽하게 공존하는 북유럽 특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지붕 위에서 만난 다른 관광객들과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어주며, 언어는 달라도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는 모든 이가 같은 마음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뭉크 미술관에서의 뜻밖의 만남

오페라 하우스에서 걸어서 몇 분 거리에 있는 뭉크 미술관으로 향했다. 2021년에 새롭게 개관한 이 13층 건물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한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에게 뭉크는 교과서에서 본 '절규' 한 작품으로만 알려진 화가였다.

첫 번째 전시실에 들어서니 해부학적 그림들이 많이 보였다. 조금 의외였지만, 뭉크의 아버지가 의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화가 자신도 인체와 의학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았다. 작품들을 하나씩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한국어 해설 소리가 들려왔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가이드의 목소리였다. 그분의 해설을 들어보니, 뭉크의 작품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그 팀을 따라다니며 '도둑 관광'을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이런 방식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가이드는 '절규'라는 작품이 실제로는 여러 점 존재하며, 원래 제목은 '절규'가 아니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뭉크가 평생 동안 남긴 작품의 대부분이 노르웨이에 남아있으며, 국외로 유출된 작품은 거의 없다고 했다. 12층에 달하는 거대한 건물 전체가 뭉크의 작품들로 가득 찬 모습을 보니, 한 예술가의 일생이 얼마나 풍성할 수 있는지를 실감했다.

뭉크의 작품을 보며 느낀 것은 예술이란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깊은 감정과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이라는 점이었다. 그의 작품 속에는 기쁨과 슬픔, 생과 사, 사랑과 절망이 모두 녹아있었다.

오슬로 대성당의 특별한 구조

뭉크 미술관을 나와 오슬로 대성당으로 향했다. 1697년에 완공된 이 성당은 노르웨이 루터교의 중심지이자 왕실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본 성당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성당 내부 구조였다. 지금까지 본 모든 성당의 본당은 정면을 향한 직사각형 형태로, 모든 신도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앉는 구조였다. 하지만 오슬로 대성당은 십자가 모양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중앙의 신도들은 제단을 정면으로 바라보지만, 양쪽 날개 부분에 앉은 신도들은 90도 다른 방향을 향해 앉게 되어 있었다.

이런 독특한 구조를 보며 궁금해졌다. 누가 저 옆자리에 앉을까? 혹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중에 알아보니, 이는 북유럽 개신교 건축의 특징 중 하나로, 십자가의 형태를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양쪽 날개 부분은 주로 성가대나 특별한 예배 때 사용되는 공간이었다.

성당 내부는 웅장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단순하고 정갈한 미가 돋보였는데, 이것이 바로 개신교 문화의 특징이자 북유럽 사람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 같았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부드러운 빛이 성당 내부를 따뜻하게 감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슬로의 심장부에서 만난 대조적인 풍경

대성당을 나와 노르웨이 국회의사당(스토팅)으로 향했다. 1866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노르웨이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그런데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 도착하니 뜻밖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추모집회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궁금해서 한 참가자에게 물어보니, 어젯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지도자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분들을 추모하고 이스라엘의 공격을 규탄하는 조용한 집회를 열고 있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의 표정에서 깊은 슬픔과 평화에 대한 간절함을 읽을 수 있었다. 언제쯤, 이 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국회의사당에서 왕궁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니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활기찬 음악 소리와 함께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8월 11일부터 16일까지 열리는 오슬로 재즈 페스티벌이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불과 100미터 거리를 두고 추모 집회와 재즈 페스티벌이 동시에 열리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오슬로라는 도시의 다양성과 포용력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었다.

재즈 페스티벌 현장에서는 여러 연주자들이 거리 곳곳에서 즉흥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색소폰의 부드러운 선율이 오슬로의 여름 오후 공기에 스며들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추고 음악을 감상했다.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음악을 즐기는 모습에서 예술이 주는 보편적인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왕궁에서 만난 소박한 아름다움

드디어 노르웨이 왕궁에 도착했다. 첫인상은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하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본 화려한 건축물들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거대한 담장이나 화려한 장식 없이, 시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열려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계속 놀라는 것이 있다. 옛날 건물들의 외부 장식에 들어간 정성과 노력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경제적 비용을 투입해서 만든 화려한 건축물들이 지금은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되어 후손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노르웨이 왕궁은 달랐다. 1849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신고전주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북유럽 특유의 간결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화려함보다는 품격을, 과시보다는 실용성을 추구한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노르웨이 왕실이 지향하는 '국민과 함께하는 왕실'의 철학을 건축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왕궁 앞 광장에서는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연인들이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노인들이 산책을 즐기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왕궁이 시민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이런 풍경이 인상 깊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슬로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계획했던 주요 명소들을 모두 둘러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뜻하지 않게 뭉크 미술관에서 한국어 해설을 들으며 예술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내일은 오슬로 외곽의 명소들을 대중교통으로 둘러볼 예정이다. 비그넬란 조각 공원과 홀멘콜렌 스키점프대 등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 하루 오슬로를 걸으며 느낀 것은 이 도시가 가진 독특한 매력이었다.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을 잃지 않고, 도시적이면서도 자연을 품고 있는 오슬로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여행은 새로운 곳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는 경험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오슬로에서의 둘째 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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